용연사 명부전의 통통한 청호랑이. 사진 가천민화박물관 제공
미국 민화 연구자가 70년대 찍은
호랑이 사찰벽화 도판 10점 공개
“사라진 원형 찾을 소중한 자료”
호랑이 사찰벽화 도판 10점 공개
“사라진 원형 찾을 소중한 자료”
소나무 위 까치를 노려보거나 토끼의 시중을 받으며 곰방대를 문 호랑이의 익살스런 모습은 한국 민화의 대명사다. 지금은 사라져 볼 수 없는 40여년 전 나라 곳곳 절집의 색다른 호랑이 벽화 사진들이 나왔다. 민화학자 윤열수(68·가천민화박물관장)씨는 1974~75년 미국의 민화 연구자 칼 스트롬, 제니퍼 부부가 국내 사찰들을 일일이 찾아가 찍은 호랑이 도판들을 최근 입수해 <한겨레>에 공개했다.
공개된 옛 호랑이 벽화들은 10여점. 전남 해남 대흥사, 경북의 영천 은해사와 예천 용문사, 대구 용연사·동화사, 경기 오산 세마대 보적사 등의 전각 나무벽에 그려졌던 것들이다. 윤 관장은 “촬영 이후 중창불사로 벽화가 있던 건물이 아예 사라지거나 새 그림을 개칠하면서 현재는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됐다”며 “사진들은 과거 사찰 민화의 원형을 찾는 데 소중한 자료”라고 했다.
벽화들은 18~20세기 초 화승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형상이 과장, 왜곡된 민화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기존 민간 민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구도나 행동을 보여준다. 해남 대흥사 침계루 벽화의 호랑이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나뭇가지에 네발 묶인 채 대롱대롱 매달렸다. 몸통이 휘고 긴 꼬리 또한 말려, 말썽 부리다 부처 앞에서 혼쭐나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은해사 거조암 외벽의 호랑이는 죽 뻗은 우람한 몸매가 한눈에도 위압적이다. 몸을 온통 푸른색으로 뒤발한 용연사명부전의 퉁퉁한 청호랑이와 자신이 피우는 담뱃대를 토끼가 힘겹게 지고 시중드는 보적사 호랑이상은 우스우면서도 정겹다.
칼 스트롬 부부는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왔다가 민화수집가 조자용과 인연을 트면서 민화와 불교, 무속에 심취해 3년여간 국내 사찰 200여곳을 조사한 뒤 귀국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토끼의 시중을 받는 보적사의 담배 피우는 호랑이. 사진 가천민화박물관 제공
늠름한 몸매를 지닌 은해사 거조암의 호랑이. 사진 가천민화박물관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