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간 남짓의 무대에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윤태현·44)의 15년 음악 여정이 담긴다. 독일어 한마디도 못하는 이탈리아 유학생이었던 그가 1999년 독일 쾰른 오페라극장에 입성해 ‘극장의 얼굴’인 주역가수가 되고 종신단원 자리에 오르기까지, 세계적인 바그너 축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주역가수로 바그너 애호가들의 영웅이 되기까지, 그 어떤 오페라보다도 드라마틱했던 삶을 음악에 실어낸다. 2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8년 만의 리사이틀에서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어떻게 지금의 사무엘 윤이 됐는지 과거와 현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라며 “차곡차곡 경험을 쌓으며 노력해온 과정이 프로그램에 녹아 있다”고 말했다.
리사이틀 1부에서 바그너 가수로 명성을 얻은 현재를 반영하는 작품들을, 2부에서는 음악인생의 중요 시점에 도약의 발판이나 전환점이 됐던 작품들을 발췌해 들려준다. “2부 프로그램 중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는 제게 첫 오페라였어요. 이탈리아 로마의 만초니 극장에서 돈 바실리오 역으로 데뷔한 것을 계기로 제게 오페라 스승이 되어 준 지휘자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리고) 그분 덕에 구노의 <파우스트>를 공부했죠.”
바로 구노의 <파우스트>가 1998년 외환위기에 따른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여파로 유학생들이 줄줄이 공부를 포기하던 시절 그를 건져 올렸다. 열번 넘게 콩쿠르에서 고배를 마신데다, 아내가 첫아이의 출산까지 앞둬 절박했던 그는 <파우스트>의 아리아들로 토티 달 몬테 국제오페라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고, 독일에서 <파우스트>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다. 이때 사무엘 윤을 눈여겨본 쾰른 오페라극장장이 오디션 참가 기회를 줘 이 극장의 전속가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이번 리사이틀에서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아리아를 들려준다. “<파우스트>가 아니었으면 인생이 전혀 달라졌을 거예요. 아마 독일로 가지도, 바그너 가수가 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1부의 바그너 레퍼토리들은 2부의 여정이 낳은 결과라 할 수 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오페라 가수로서 그에게 가장 큰 성취를 안겨준 작품이다. 그는 바그너의 성지로 불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2012년 이 작품의 타이틀롤을 꿰찬 뒤 매년 같은 배역으로 출연하며 바그너 전문 가수로 존재를 각인시켰다. 이 밖에 ‘동양인이 소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따냈던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중 2부 ‘발퀴레’의 보탄 역도 선보인다.
사무엘 윤은 최근 쾰른 오페라극장의 종신단원이 됐다. “전속가수로 15년 일하면 극장이 종신단원 자격을 줄지 말지를 결정해요. 계약서를 받아 들고 짜릿했죠.” 그를 내보내면 같은 연봉으로 두명의 단원을 더 데려올 수 있지만, 극장은 1년 중 10개월간 다른 무대에서의 공연을 허락하면서도 그를 택했다.
글·사진 김소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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