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어제의 기술로 빚어낸 오늘의 예술

등록 2015-01-20 19:43

서울시립미술관 ‘로우테크놀로지’전에 전시된, 양정욱 작가의 조형물인 ‘언제나 피곤은 꿈과 함께’
서울시립미술관 ‘로우테크놀로지’전에 전시된, 양정욱 작가의 조형물인 ‘언제나 피곤은 꿈과 함께’
서울시립미술관 ‘로우테크놀로지’전
첨단이미지 대신 재래식 기술 사용
속도에 치우친 도시의 일상 그려내
‘싸르르싸르르’ 소리를 내며 괴물이 다가왔다. 캄캄한 방에서 형형색색 빛을 깜빡거리며 촉수를 내뻗는 거대한 비닐덩어리였다. 해파리처럼 꿈틀꿈틀 떠다니는 자태가 음산하고 섬뜩한 느낌을 자아낸다. 작가 이병찬씨가 형형색색의 1회용 쓰레기 수거봉지 수백개를 엮어 만든 조형물 ‘갈라파고스’다. 에어모터로 공기가 들어갈 때마다 숨쉬듯 꿈틀거리는 이 덩어리 괴물을 작가는 도시의 소비와 욕망이 빚어낸 생명체라고 했다.

새해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 1층은 요상한 괴물들과 기계장치들로 가득 차 있다. 첨단 테크놀로지가 아닌 낮은 수준의 기술, 이름하여 ‘로우테크놀로지’로 나름의 상상력을 발산하는 작가들의 전시회 ‘로우테크놀로지:미래로 돌아가다’의 풍경이다. 그들이 뚝딱거려 만든 ‘갈라파고스’ 같은 인공 괴물들과 일상 생활에는 쓸모 없는 기괴한 기기, 영상들이 등장했다. 첨단영상이미지들로 뒤덮힌 요즘 미술판에서 낮은 기술로 속도에 치우친 지금 일상과 세상에 대한 성찰을 담아보여주려는 시도들이다.

출품작들은 기술적으로 뛰어나지 않아도, 인간적인 호소력이 물씬하다. ‘언제나 피곤은 꿈과 함께’(사진)라는 양정욱 작가의 움직이는 조형물은 얼기설기 손수 짜맞춘 기계장치들의 움직임 얼개를 끽끽 삐걱대는 작동음을 들으며 엿볼 수 있다. 판박이로 되풀이되는 도시인 일상을 담은 기록을 엉성한 기계장치의 움직임을 통해 형상화한 것이다.

정성윤 작가의 ‘일식’은 두개의 검은 원판이 두 레일 위를 천천히 움직이면서 겹쳤다 멀어졌다를 되풀이한다. 불길, 몰락을 상징했던 일식 이미지를 인공적으로 재현해 관객들만의 상상과 생각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길이 4미터의 거대셔츠가 드리워진 버스정류장 시설물을 들여와 앉아 쉬라고 권하는 이원우씨의 설치작업과 에어포터로 바람을 불어넣어 정육면체를 공중에 둥둥 띄운 이배경씨의 작업은 경쟁지상시대의 피곤함을 색다른 재치로 은유하고 있기도 하다.

전시의 또다른 미덕은 고 육태진을 비롯해 홍성도, 문주 등 90년대 등장한 1세대 미디어아티스트의 작업들이다. 다른 후배 작가들 작품과 이들의 구작을 함께 배치해 새롭게 의미를 만들어냈다.

길 걷는 남자의 뒷모습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모니터가 고가구 위에서 앞뒤로 움직이는 육태진의 구작은 이 시대 자아와 내면에 대한 질문으로도 와닿는다. 옛적 사촌간이었던 기술과 예술의 친연성을 새삼 일깨우는 전시지만, 개별 작가들의 색다른 작품 양상들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 탓에 기술이 왜 예술의 유력한 동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은 미흡하다는 느낌도 남는다. 2월1일까지. (02)2124-80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