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무대X파일
몸짓 살리는 날개? 시선 뺏는 도발?
몇주 전 이 칼럼을 통해 소개했던 마리 탈리오니는 실상 발레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로 기록될 만한 인물이다. 이 여성에 의해 보편화된 발끝으로 서는 포인트 테크닉은 그 밖의 부수적인, 그러나 중요한 많은 요소들을 변화시켰다. 발끝으로 반듯하게 서 있는 모습을 더욱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일단 오늘날의 발레 슈즈가 탄생한 것도 혁신 적인 변화 중 하나였다.(탈리오니 이전의 무용수들은 굽이 달린 구두를 신고 춤을 추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획기적으로 바뀐 것은 발레리나들의 의상이었다. 이전까지의 발레 의상은 연극이나 오페라와 같은 다른 극예술 공연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탈리오니가 <라 실피드>를 추며 입었던 하얀 종모양의 스커트는 오늘날 발레 의상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지금도 <지젤>이라든가 <레 실피드> 공연에서 요정 역할의 발레리나들이 입는, 망사천을 여러 겹 겹쳐서 만든 이 스커트는 무용수들이 춤을 출 때면 공중에 휘날리며 요정세계와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내기에 딱이었다. 이처럼 길이가 긴 종모양의 발레의상을 ‘로맨틱 튀튀’라고 부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발레리나들의 하체 테크닉은 상체 테크닉을 추월하여 발전을 거듭하였고, 다리의 테크닉이 발전하면 할 수록 그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자 발레리나들의 치마길이는 짧아져갔다. 그리하여 치마 길이는 허리까지 올라왔다. 허리에서 직각으로 부채꼴처럼 펼쳐지는 짧은 발레의상, 이른바 ‘클래식 튀튀’가 탄생했다. <백조의 호수>라든가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볼 수 있는 발레리나들의 짧은 치마가 바로 이 클래식 튀튀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양식과 의상들이 표준으로 설정될 때까지 수많은 사고와 발레리나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가스등이 막 발명되어 오페라극장에 설치되었을 즈음, 극장측은 발레리나들에게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의상에 물을 축일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로맨틱 튀튀가 둔해 보일까봐 이 권고를 지키지 않았던 영국의 발레리나 엠마 리브리는 <레 실피드>를 추다가 치마에 불이 붙어 화상으로 일주일만에 숨졌다.
발레리나들의 테크닉을 보여주기 위해서라지만, 실상 튀튀는 그보다 더욱 엉큼한 의미를 감추고 있는 의상이다. 허리 위에서 직각으로 펼쳐지는 튀튀를 입은 발레리나들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무용수들의 다리보다는 엉덩이에 더 눈길이 쏠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지 발란신이라든가 모리스 베자르와 같은 현대무용 안무가들은 튀튀가 춤을 보여주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면서 무용수들에게 연습용 타이즈만 입혀 자신의 춤을 추게 했다. ‘튀튀(Tu Tu)’가 불어로 ‘작은 엉덩이’라는 의미인 것을 따져볼 때, 이와 같은 주장이 일리가 없지는 않은 듯싶다.
노승림 공연 칼럼니스트/성남문화재단 홍보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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