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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헉헉, 헛방이다 혁명은

등록 2015-01-21 19:37수정 2015-01-21 21:06

구자혜 작·연출의 연극 <디스 디스토피아>는 라켓을 아무리 휘둘러도 공이 보이지 않는 전망 상실의 사회를 세대론적으로 그렸다. 김도웅 작가 제공
구자혜 작·연출의 연극 <디스 디스토피아>는 라켓을 아무리 휘둘러도 공이 보이지 않는 전망 상실의 사회를 세대론적으로 그렸다. 김도웅 작가 제공
연극 ‘디스 디스토피아’
여성의 발차기가 허공을 찌른다. 두 남성은 서로에게 태클을 건다. 태권도, 권투, 스케이트, 레슬링…. 8명의 배우 모두 스포츠에 열중한다. 땀을 뻘뻘, 숨이 턱턱. 스포츠는 ‘운동권’의 은유다. 곧 혁명을 꿈꾸던 세대다. 한 쌍의 남녀가 테니스를 친다. 남녀는 헐떡인다. 섹스의 은유다. 남녀는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은 자라 탁구를 치고 책을 읽는다. ‘테니스 남녀’는 혁명을 꿈꿨던 1세대, ‘탁구 남녀’는 1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혁명을 꿈꿨던 2세대다. 2세대가 낳은 3세대 아이들은 ‘불임의 세대’다. 1·2·3세대가 사는 이곳은 디스토피아. 아이들은 이미 고추에 털이 난 채로 태어나며, 가슴에 휴지를 넣어 봉긋 솟게하고 허벅지를 면도칼로 그어 생리혈을 흉내낸다.

지난 20일 저녁 서울 대학로 지하 연습실.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 단원들이 2월 4~8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올리는 <디스 디스토피아> 연습에 한창이다. 서울문화재단이 2014년 연극부문 유망예술지원 프로그램 ‘뉴스테이지’로 선정한 연극 세 편 중 하나다. 나머지 두 편도 같은 무대에 선다. 22~25일 오르는 <날개, 돋다>와 29~2월1일 오르는 <안전가족>이다. 연극계 ‘젊은 피’들이 동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를 들고 활기차게 새해를 열어제치는 것이다.

스포츠에 열중한 배우들 통해
혁명 단절·전망상실 시대 은유
대신 ‘꼰대질’만 남은 사회 그려

구자혜 작·연출의 <디스 디스토피아>는 혁명의 기운이 이어지지 않고 ‘꼰대질’만 남은 사회를 그렸다. 한때 사람들은 라켓을 휘두르며 세상과 맞섰다. 하지만 라켓을 아무리 휘둘러도 공이 보이지 않는 시대가 왔다. 투쟁대상 상실, 전망 상실의 시대다. 혁명을 꿈꿨던 1세대는 “공이 없을 리가 없잖아. 우리가 이렇게 치고 있는데. 공!”이라며 열심히 공을 찾는다. 하지만 헛방이다. 그리고 1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혁명을 꿈꿨던 2세대는 “나라고 공이 보이겠어? 그냥 닥치고 치라고!”라며 관성적이고 맹목적으로 휘두른다. 이것도 당연히 헛방이다.

전망을 잃어버린 세대의 헛손질은 ‘꼰대질’로 나타난다. 다음 세대에게는 엄청난 폭력이다. “다리 떤다고 엄마, 아빠에게 탁구 라켓으로 뺨을 맞은 그날 밤. 난 동네 전봇대에 기대어 서서 우유를 소주처럼 벌컥벌컥 마시며 휘파람을 불었어요.” 구자혜 연출은 ‘이 세계를 디스(diss,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언행을 일컫는 힙합 용어)할 것인가, 혹은 디스(this) 디스토피아를 직시할 것인가’라고 관객에게 묻는다. 주제는 무겁지만 표현은 엉뚱발랄하다.

‘뉴스테이지’의 세 작품 중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르는 이래은 작·연출의 <날개, 돋다>는 선녀와 나무꾼, 아기 장수 설화를 본뜬 성장 우화다. 획일화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찾는 청소년의 성장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김수정 연출의 <안전가족>은 그리스의 장편독립영화 <송곳니>를 각색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집안에서 질서를 지키며 살기를 강요하지만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자라면서 균열이 생긴다. 강요된 질서를 지키며 사는 현대인에게 ‘당신은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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