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바그너 4부작 악극 ‘니벨룽의 반지’ 리뷰

등록 2005-09-28 16:49수정 2005-09-29 14:06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아직도 신화속 세상
공연 시간만 나흘, 16시간이 소요되는 바그너의 4부작 악극 ‘니벨룽의 반지’가 지난 24일 토요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되어 장안의 화제다. ‘러시아의 음악황제’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자신의 악단인 마린스키 오페라를 이끌고 내한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이 대하 음악드라마를 펼쳐놓고 있는 중이다. 게르기예프가 지휘는 물론 연출 구상까지 한 이번 ‘니벨룽의 반지’는 신과 인간이 함께 울고 웃으며 더불어 살고 소통하던 옛날 옛적 이야기를 소담스럽고도 흥미진진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24일 토요일 ‘라인의 황금’, 25일 일요일 ‘발퀴레’, 27일 화요일 ‘지그프리트’까지 3일간 지켜본 이 작품은 색채감 넘치는 동화적 세계와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는 듯 신화를 따라가면서 감상하는 지적 즐거움을 청중에게 안겨준다. 한 막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바그너의 무한선율과 잘 번역된 자막 대본, 무대에 등장한 지하의 난장이 니벨룽족과 지상의 거인족, 그리고 구름 위와 지상을 넘나드는 신들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장기판을 관찰하는 듯한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이번 ‘반지’ 무대에서는 막마다 거대한 거인의 모습을 한 입상이나 와상이 무대의 배경이 되고 있는데 게르기예프는 자신의 고향 땅인 카프카즈의 고대 전설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미지들과 인도네시아 토템 등을 등장시켰다. 독일인들의 바그너 연출이 갖고 있는, 그들만의 신화적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점에서 탈피해 전인류적인 신화의 모습으로 ‘반지’ 해석을 확장한 것이다.

무엇보다 90년대 후반부터 바그너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갈라 콘서트를 통해 마린스키 극장에서 꾸준히 바그너를 연주해온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숙련된 사운드가 돋보였다. 게르기예프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평소 오페라 공연 때의 높이와는 달리 깊숙이 들어가게 해 오케스트라가 극을 방해하지 않도록, 보이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음향적 깊이를 느끼게 하는 바이로이트적 스타일을 추구했다. 그동안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전매특허 하면 휘몰아치는 드라마틱한 음악을 연상하게 했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서 주인공들의 사랑을 표현할 때 한줄기 빛처럼 쏟아지는 달콤한 멜로디 라인은 그가 대단히 섬세한 지휘자라는 것을 증명해 주기도 했다. 성악진에는 편차가 있었는데 알베리히역의 에뎀 우메로프는 시원하고 선이 굵은 가창이 뛰어났으나, 로게의 경우 정제되지 못한 가창과 시정잡배처럼 해석된 연기가 불만족스러웠다. 교체 출연한 신의 우두머리 보탄역에서 ‘라인의 황금’과 ‘지그프리트’에서 보탄 역을 맡았던 예브게니 니키틴이 카리스마는 적었지만 지적이고 서유럽적인 탄탄한 가창을 들려주었고, ‘발퀴레’에서 보탄 역을 불렀던 미하일 키트는 격조와 품위가 담겨있는 보탄이었는데, 전체적으로 보탄에 대한 이번 연출은 압도적인 신의 카리스마보다는 인간적인 신의 모습을 그려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공연을 보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아직도 신화 속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강렬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니벨룽의 반지’ 마지막 공연은 29일 목요일, 오늘 오후 5시에 열리는 4부 ‘신들의 황혼’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장일범/음악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