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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500명의 이름을 얻다

등록 2015-01-27 19:31수정 2015-01-27 19:35

시니어 통신
은퇴하고서 무료하고 지루한 나날을 보내던 중 베이비붐세대 은퇴자의 사회공헌 일자리 제도가 시행되었다. 나는 고용노동부에서 시행하는 교육을 수료하고 사단법인 은평상상에서 마을 기록업무를 시작했다. 은평 지역에서 실시하는 문화지기 교육과 서울시 마을공동체 기관의 아키비스트(마을기록가) 강좌를 들으면서 이 일에 대해 조금씩 이해했다.

처음에는 나이 들어 행사장에 나타나는 나를 반겨줄 사람도 없어 한쪽 구석에서 서성이며 기사를 마련하고 쭈뼛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마을을 기록하는 일은 발품을 팔아야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일이다. 양말과 신발을 몇 켤레씩 닳아 없애는 노력만큼 건강도 얻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알게 된 은평의 사람들은 나의 좋은 멘토가 되었고, 나는 은평구 주민참여위원으로, 학교급식 모니터링단원으로, 동 참여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지금 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가 500명 정도다. 사회생활 때보다 더 많은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연락하며 지내는 전 직장 동료는 고작 30명 내외일 것이다. 40년째 살고 있는 마을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고, 마을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왔던 내가 이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500명에서 앞으로 더 많은 멘토들이 생겨날 것이다. 20대의 대학생부터 나이 많은 선배들, 그리고 사회공헌 활동에서 만난 동료들이 내 생활에 활력소가 될 것이다. 40여개 시민단체가 내가 행사에서 얻은 자료들을 필요로 할 때 이 일에 대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지난해 말에는 활동을 하며 찍은 사진을 모아 <최호진의 마을을 기록하다>라는 작은 책도 구청의 도움으로 출간했고, 고용노동부가 주최하는 제1회 대한민국 중장년 사회공헌 경진대회 수기공모전에서 입상해 보람된 한 해를 마무리하였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다녀도 인사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자 몸과 마음, 행동을 스스로 더 조심하고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손가락질 받지 않는 노인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이모작 인생을 시작하려는 은퇴자를 위해 정부와 관계기관에서 더 많은 사회공헌 일자리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

최호진(74) 한겨레주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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