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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빙하의 바닥, 그 눈 언제 내렸는지 헤아려보라

등록 2015-01-28 19:10수정 2015-01-28 21:07

극지의 대자연과 문명 흔적을 찍은 한성필씨의 신작 ‘시간의 무게 5’. 도판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극지의 대자연과 문명 흔적을 찍은 한성필씨의 신작 ‘시간의 무게 5’. 도판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한성필 사진전 ‘지극의 상속’
흰 안개 피워올리는 거대한 테이블 같은 빙산 지붕이, 순백의 눈골짝 사이 스며들어간 코발트빛 호숫물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귀기가 어린 푸른빛 얼음표면이 눈층의 압력으로 쩍쩍 갈라지거나 찢겨져 나가는 빙하층 단면들은 두렵고도 황홀한 미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웬만한 작품들이 길이 1m, 2m를 넘는 한성필 사진가의 신작 속 풍경들은 주로 남극과 북극의 절대미를 간직한 비경들이다.

서울 북촌 아라리오갤러리서울에 마련된 그의 개인전 ‘지극의 상속(Polar Heir)’에서 2년여간 북극과 남극 일대를 오가며 촬영 프로젝트를 벌였던 그의 역작들과 만나게 된다.

북극점 인근인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와 남극해 부근 사우스셰틀랜드 등에서 대자연과 인간들이 남긴 흔적을 찍은 것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나오는 명품 다큐사진들과 비슷한 극지 배경과 소재를 택했다. 그러나 출품작들을 살펴보면 작가 나름의 뚜렷한 개념적 의지가 일관되게 관철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전시 제목인 ‘지극(地極)’은 지축의 양끝, 남북극인데, 이걸 상속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작가는 자연이 품은 시간성을 캐는 것이 작업의 주된 개념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자연 공간에서 시간의 자취를 제대로 느껴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라는 물음과 잇닿는다는 것이다.

2년여간 남극·북극 오가며
극한 속 계속 쌓이는 눈 통해
잊고 있던 지구의 시간성 환기

작가는 대설원과 기이한 설산, 그 지형 속에서 풀려내려온 대빙하의 단면들을 큰 화면과 섬세한 앵글로 조명하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지구의 시간성을 환기시킨다. 극한의 기온 탓에 과거의 눈이 계속 쌓이고 쌓여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극지의 엄숙한 시간적 층위를 거대 화면과 세부로 드러낸 것이다.

이런 접근이 자칫 진부한 다큐생태사진에 머물 수도 있지만, 영악한 작가는 극지에 묻혀진 인간문명의 옛 흔적도 적절히 포착해 대자연과 병치시킴으로써 그런 맹점도 잘 피해갔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북극 섬과 남극 대륙 일대에 진출해 탄광이나 고래잡이 등으로 이윤쟁탈전을 벌였던 인간들의 흔적, 결국 퇴락해 다시 설원과 얼음 속에 묻혀가는 옛 탄광촌, 공장, 터널 등의 모습이 강렬하게 와닿는다.

작가는 지난 10여년간 복원 중인 건축물과 그 앞에 두른 공사용 가림막, 건물 벽화 등을 촬영해 재구성한 ‘파사드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실제와 환영의 간극을 죽 탐구해온 그에게 이번 남북극 작업은 작가적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전략적으로 작업 화두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며, 하나를 찾으면 오랫동안 몰입하는 이 사진가가 점찍은 다음 행선지는 인도네시아 섬들이다. 2월22일까지. (02)541-5701.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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