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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아르코 미술관 최진욱·홍경택 전

등록 2005-09-28 21:53수정 2005-09-28 21:53

봄날 개나리 산책길을 그린 최진욱씨의 아크릴 그림 <러브이스리얼>(2005·왼쪽). 그림을 그릴 때 라디오에서 들었다는 존 레논의 노래 제목을 그대로 붙였다. 오른쪽 도판은 요란한 펑키 이미지들을 그린 홍경택씨의 유화 <PLUR DMSR>(2005).
봄날 개나리 산책길을 그린 최진욱씨의 아크릴 그림 <러브이스리얼>(2005·왼쪽). 그림을 그릴 때 라디오에서 들었다는 존 레논의 노래 제목을 그대로 붙였다. 오른쪽 도판은 요란한 펑키 이미지들을 그린 홍경택씨의 유화 (2005).
그림이란?…존재가치 되물은 ‘재현그림’

아름다운 풍경과 특이한 사물을 화폭에 옮겨 내어 담는 행위, 곧 재현은 우리가 아는 그림에 대한 가장 전형적이고도 상식적인 행위다. 올 가을 미술판에서는 유난히 그림의 전통적 기능인 재현의 문제를 붙잡고 씨름해온 중견 작가들의 근작 전시가 두드러진다. 로댕갤러리의 김홍주 전(10월30일까지)에 이어 최근 개막한 최진욱 전(10월20일까지)과 홍경택 전(10월23일까지)은 영상 이미지가 범람하는 현대미술의 현실 속에서 한결같이 사실적 그림의 존재 가치를 고통스럽게 되묻고 있다.

최진욱 인식의 차원에서 일상 재현
홍경택 팝문화 이미지 펑크적 재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미술관의 후신으로 재개관한 아르코 미술관(02-760-4724)에 나란히 차려진 최씨와 홍씨의 작업들은 얼핏 단순할 것 같은 재현그림에 대해 극단적으로 엇갈린 시선을 풀어낸다. 최씨가 지극히 평범한 일상적 풍경을 작가의 주관적인 눈으로 화폭에 해석해 풀어내는 인식의 과정을 보여주는 반면, 홍씨는 가볍고 튀는 쇼무대적 이미지들로 관객의 눈을 때리는 펑크적 재현을 선보이고 있다.

우선 3년만에 ‘러브이즈리얼’이란 제목으로 선보이는 최씨의 근작들은 이전 작업처럼 해수욕장이나 벚꽃공원의 주차장, 개나리 꽃길 등 범속한 풍경들을 이리저리 뜯어본 그림들인데, 작가 김홍주씨의 작업과 자꾸 비교되는 느낌을 피하기 어렵다. 김씨가 본능에 가까운 육체적인 붓질로 꽃과 과일 등에 대한 재현을 천작해왔다면 최씨는 철저히 인식의 차원에서 일상을 재현하는 문제와 싸워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폭을 겹치거나 엇갈리게 배치하면서 풍경을 보는 순간의 느낌과 정서를 부각시키는 그의 기본적 그림틀은 김씨와 달리 각별한 변화를 이루었다고 보기 어려울 듯하다. 주차장의 벚꽃과 관광버스, 기사의 모습을 함께 그린 그림이나 개나리 벚꽃길을 그린 밝은 터치의 작업에서 그는 마치 영화의 소품들을 보듯 시선을 들이대면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그림 특유의 개념적인 틀거지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개나리 길을 그리면서 존 레논의 <러브>라는 곡을 들을 때의 감흥이 그림에 꽂혔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의 개인적 정서가 영화적 화면에 스며들어간 흔적이 보이지만 그림의 틀과 구도는 여전히 개념적 시선 속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국가보안법과 단색조 그림의 관계를 풍자적으로 쓴 핑크글씨나 앵무티브이, ‘아름다운 여자 되는 법’ 등의 글자 드로잉 등 새 작업들은 이런 재현의 싸움 와중에서 간신히 찾아낸 틈새처럼 보인다. 전시는 재현에 대한 작가의 악전고투가 얼마나 핍진한가를 다시금 확인해주는 차원에 머무른 셈이다. 전시 서문에서 “의무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뿐, 자신있게 느낌이 담겨있다고 할 만한 그림은 없다”고 말한 작가의 고백은 이성적 인식으로 재현을 뜯어보는 작업의 피로감을 반영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림이란?…존재가치 되물은 ‘재현그림’ 아르코 미술관 최진욱·홍경택 전
그림이란?…존재가치 되물은 ‘재현그림’ 아르코 미술관 최진욱·홍경택 전
홍씨는 수작업으로 펑크 대중문화의 떠들썩하고 요란한 이미지들을 줄달음하는 파격적 변신을 감행했다. 옛 민화의 책거리 그림에 근원을 두고 플라스틱의 매끈한 색조로 책꽂이를 빽빽히 메운 독특한 이미지의 작업을 해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 대중 음악장르 펑크와 오케스트라의 합성어인 ‘펑케스트라’라는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섹스, 전쟁, 팝 문화 등 현대 문명의 여러 잡다한 개념과 이미지들을 극장 쇼무대처럼 묘사하면서 편집증적인 상징공간을 표출한 것인데, 고흐, 교황 등의 이미지를 영문자와 조합한다든가 청풍명월 등의 글자를 조악한 표어처럼 그려넣으면서 디지털 시대 팝문화의 상징들을 정밀한 수작업으로 재현하고 있다. 잠잠한 백색 전시공간에서 요란하고 시끄러운 음악 같은 그의 이미지 작업들은 겹쳐 보여지면서 마치 기괴한 신전 속 같은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디지털 문화의 매끈한 촉감, 디자인적 구성으로 채워진 여러 화면들 속에서 재현 그림의 새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가의 야심을 읽을 수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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