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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도포 자락 휘날리고…한 마리 학이 날았다

등록 2015-02-04 19:24수정 2015-02-04 21:09

‘호방한 남성춤’ 한량무가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예능보유자 조흥동이 춤판을 벌인다.
MCT 제공
‘호방한 남성춤’ 한량무가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예능보유자 조흥동이 춤판을 벌인다. MCT 제공
27~28일 ‘조흥동 춤의 세계’
기백·기개 넘치는 학 자태 닮은
호방한 남자춤 ‘한량무’ 선봬
서울시 무형문화재 지정 기념공연
유성기에서 민요 가락이 흘러나왔다. 가락에 몸을 맡겼다. 코흘리개 소년은 누나의 분홍 치마를 입었다. 누나만 넷을 둔 집의 막내였다. 경기도 이천의 마을 걸립패 아저씨들은 소년을 어깨 위에 무동(舞童)으로 세웠다. 하얀 꼬깔을 쓰고 치마 저고리를 입었다. 그에게 “춤이 왔다.” 서울로 유학 온 까까머리 소년은 풍문·이화·덕성여고 학생들 틈에서 춤을 배웠다. 춤추다가 거울을 통해 힐끗 보면, 여학생들은 소년을 가리키며 “계집애 같다”며 킥킥댔다. 그러다 “춤에 눈을 떴다.” “공대나 상대를 가라는 집안을 속이고” 서라벌예대 체육무용과로 진학했다. 수십 분을 춤 선생으로 모시고 공부했다. 밤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춤 동작을 머리에 그렸다. 조흥동(74)에게 춤은 운명이었다.

조흥동은 이달 27, 28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조흥동 춤의 세계’를 무대에 올린다. 그의 대표작 한량무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춤판이다. 3일 서울 남산 자락 버티고개에 자리 잡은 ‘조흥동 춤 전수관’에서 그를 만났다. 말끔하고 정정한 조흥동은 60평(200㎡) 전수관에서 춤을 추고 후배들을 가르친다.

한량무는 우리 춤의 아버지 한성준(1874~1941)에서 강선영을 거쳐 조흥동에게 전수됐다. “한성준 선생의 한량무는 한량, 색시, 주모, 노승 등이 나오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사회풍자적인 춤이었다. 내 한량무는 한성준의 전통을 이어받아 조흥동이 독무로 재안무한 한량무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서도 4명이 추는 한성준의 원류 한량무와 독무로 재안무한 조흥동의 한량무를 동시에 보여줄 예정이다.”

한량무는 어떤 춤일까? “살풀이는 여자춤이고 한량무는 호방한 남자춤이다. 살풀이는 여성답게 보폭이 짧고 동작이 작고, 한량무는 보폭이 넓고 내면세계를 표출하는 동작이 크다.”

한량무는 기백과 기개가 넘치고 고고한 학의 자태를 닮았다. 무대에 불이 들어오면 빠르고 높은 음역의 청성곡이 흐른다. 한편에서 백색 도포에 검은 갓, 술띠와 갓신 차림에 큰 부채로 얼굴을 가린 선비가 등장한다. 느린 진양조가 흐르면 하늘을 응시하다가 양팔을 도포 자락에 넣고, 중모리에는 무대 중앙으로 나서면서 한 마리 고고한 학의 자태가 된다.

조흥동이 한량무를 처음 무대에 올렸을 때 극작가 차범석(1924~2006)은 극찬했다. “남성무용수가 드문 현실에서 조흥동의 춤 세계는 확고부동하다. 첫째 그의 신체조건이 가장 알맞다는 외적인 인상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활력과 절도와 여운이 잘 어우러져 높은 품격마저 느끼게 하는 한량무는 거세된 중성화가 아닌, 한국 춤의 남성미를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장안의 유명한 춤 선생들에게 두루 배웠다. “선생님을 수십 명 찾아다니며 춤을 배웠다. 김진걸 선생은 산조춤 명인인데, 가야금 산조에 맞춰 추는 직선적이고 단아한 춤이다. 한영숙한테서 승무를, 봉원사 주지였던 박송암 스님한테서 불교의 바라춤·나비춤·범패(불교음악인 범패에 맞춰 추는 춤)를, 정인방한테서 학춤과 신선무를, 은방초한테서 살풀이를, 김석출한테서 동해안 별신굿(오귀굿)을, 이매방한테서 오고무와 승무를….”

그 가운데 정인방의 춤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정인방은 창작춤이 아닌 옛 춤 그대로 추는 분이다. 학춤을 추면, 학이 눈 위를 걷는데 눈 위에 발자국이 하나도 남지 않는듯했다. 춤의 곡선이 누에가 실을 뽑는 듯 아름다웠다. 학을 닮은 섬세한 디딤새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 우리 춤이 저리 곱고 곱구나!”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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