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키는대로 풍경을 끌어와 찍는다. 술을 좋아해 때론 취중 촬영도 즐겨한다. 특정한 이념이나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다. 자기 작업에는 무한책임을 지고 일한다. 디카가 절대 대세라는 지금 사진판에서 한사코 필름 카메라를 써서 아날로그로 찍고 현상하는 공정을 고집해온 영국과 한국 출신 두 사진대가의 공통점이다. 강원도 삼척 솔섬 사진(왼쪽)을 비롯해 한국, 일본, 프랑스 등지의 감각적 자연 풍경을 선보이면서 세계 각지에 골수팬들을 거느린 마이클 케나(62). 종묘와 경주의 소나무 사진들로 국내외 유명 컬렉터들로부터 각광받는 배병우(65)씨. 세살 터울인 두 사진가가 서울 청와대춘추관 바로 옆 공근혜갤러리에서 ‘뻔한 풍경사진’이란 전시를 차렸다.
케나는 가로 세로 각각 20cm 남짓한 작은 치수 사진 속에서 자잘한 형상과 색조의 알갱이가 낱낱이 드러나는 풍경들을 빚어낸다. 바닷속 미세한 돌무더기와 암초들이, 철망 뒤로 비치는 그믐달의 세세한 자태가 눈에 잡힌다. 이 정밀한 풍경은 보이지 않는 암실에서 장인적 수공을 거듭해 빚어낸 각별한 인화 작업의 결실. 그래서 보는 이의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고양시킨다. 프랑스 휴양지 니스 제방 앞 바다의 질감과 브루고뉴 시골 마을의 종탑과 대지의 굴곡, 와인산지 보르도의 포도밭 고랑 사이의 날카로운 명암선,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게 헌사한 브레타뉴 시골길의 빽빽한 가로수 대열 등등이 생경할 정도로 선연하게 와닿는다. 무한감각이란 말이 붙을만큼 정제된 이 자연풍경은, ‘마이클에 비하면 뻥튀기’라고 농담할 만큼 나무의 호방한 기운을 살린 배씨의 소나무 대작(오른쪽)과 궁합이 들어맞는다.
‘흔해 빠진 풍경사진 ’이란 제목은 화랑주가 나름 복선을 깔고 붙인 것이다. 2007년 2월 어느날 낮에 케나가 찍은 솔섬 사진과 구도가 닮은 2010년 솔섬 풍경 공모전 선정작을 대한항공이 양해 없이 광고에 쓴 것이 문제가 됐다. 화랑은 이듬해 항공사에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2010년 8월 새벽 아마추어 사진가가 케나와 거의 같은 지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12월 “피사체가 자연물일 경우 누가 찍어도 유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다”며 대한항공 손을 들어줬다. 작가가 잡아낸 특정 풍경의 구도 자체가 저작권 근거가 될 수 없다는 해석이었다.
애초 사진계 시선은 케나를 옹호하는 쪽과 특정한 풍경 구도를 특정작가가 먼저 확보했다고 저작권을 다 부여해줘야하느냐는 쪽으로 갈렸다. 결국 특정한 풍경을 포착하는 것을 특정 사진가의 독점권리로 보호할 수 없다는 판례가 남게됐다. 6일 전시 개막식에서 만난 두 작가는 법적 판결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케나는 문제의 대한항공 광고 작품을 “나이스카피!(멋진 베끼기)”라고 파안대소하며 와인 잔을 부딪혔다. 배병우씨도 “법적 잣대로 따질 문제냐. ‘이런 구도의 풍경을 먼저 찍은 작가가 있으니 존중하고 조심해야겠다’는 문화적 양식, 도리의 부재로 봐야한다. 결국 한 나라 문화수준 아니겠냐”고 피식 웃었다. 3월8일까지. (02) 738-7776.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공근혜갤러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