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초부터 안톤 체호프의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윤택 연출의 <바냐 삼촌>은 한국적 체호프를 내걸어 주목을 끈다. 연희단거리패 제공
안톤 체호프 작품 잇단 무대에
2014년은 탄생 450돌을 맞은 셰익스피어(1564~1616)의 해였다. 2015년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작품들로 풍요롭다. 지난해 체호프 서거 110주년에 틔운 싹이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무대에 오른 체호프 작품은 러시아 유학파 전훈 연출의 <잉여인간 이바노프>와 한국연극계의 거장 이윤택 연출의 <바냐 삼촌>을 주목할만하다. 전훈이 극사실주의적 접근을 보이는 반면 이윤택 연출은 한국적 체호프를 표방하고 나섰다. 여기에 미발표 단편을 바탕으로 한 <체홉, 여성을 읽다>도 주목을 받고 있다. 여성의 에로티시즘에 주목한 작품이다. 3월과 8월에도 체호프 바람은 계속될 예정이다.
‘극사실주의’ 전훈 연출
모스크바 연극대 유학파답게
스타니슬랍스키 연기론 바탕
‘잉여인간 이바노프’ 세세하게 ‘한국형 체호프’ 이윤택 연출
대륙적 리얼리즘 버리고
한국적 로맨틱 감성 살려
‘바냐 삼촌’ 희극성에 방점
셰익스피어와 다른 체호프의 힘 ‘일상성’
2015년 시작부터 체호프가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그는 <벚꽃동산>, <바냐 삼촌>, <세 자매>, <갈매기> 등 ‘4대 장막’ 등을 통해 19세기 말 러시아의 내면 풍경을 세밀화로 묘사했다. 사실주의로 녹여낸 ‘일상성’은 시대를 넘어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연극학도에게 체호프는 필수과목이며, 일반인들에겐 깊이 있는 인간탐구의 통로다. 연극계와 관객의 욕구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안똔체홉학회장’을 맡고 있는 전훈 연출은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시어이고 체호프는 일상어로 쓰였다”고 말한다. 체호프는 외부의 큰 사건보다 인간의 일상과 내면을 통해 사람들을 흡인한다는 것이다. 대학 연극 관련 학과의 졸업작품으로 체호프가 자주 오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른 작가의 작품들은 주연과 조연 등 몇 명으로 이뤄지지만, 체호프의 작품은 10여 여명이 나오더라도 모두 주인공처럼 각자가 개성을 가진다. 그 점 때문에 배우들 모두 주연처럼 연기하고 공부할 점이 많다.”
연희단거리패를 이끄는 거장 이윤택은 이번에 <바냐 삼촌>으로 처음 체호프를 연출했다. 그 역시 체호프의 일상성에 주목한다. “셰익스피어는 이상주의적인 연극이고, 체호프는 일상적인 ‘찌질이 연극’이다.” 셰익스피어 연극은 일상 저 너머에 있는 반면, 체호프 연극은 사소한 일상에 밀착해 있다는 것이다. 이윤택이 연극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도 체호프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는데, 체호프의 <벚꽃동산>을 읽고 쓴 글 때문이었다. 그때 ‘아, 난 연극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극사실주의 전훈, 한국형 체호프 이윤택
두 연출가 모두 체호프의 일상성에 주목하지만, 만드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1992~1996년 모스크바 국립 쉐프킨연극대를 유학한 전훈은 러시아식 극사실주의(하이퍼리얼리즘)를 지향한다. 전훈은 2000년 제자들을 모아 ‘애플씨어터’를 창단했다. 그에게 ‘리얼한 것’(실감나는 것)과 리얼리티(현실성)는 다르다. 그래서 실감나는 연기를 지향한다. 바로 감정과 동작의 세세한 부분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극사실주의적 연출이다. 표현방식은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론(메소드)에 바탕을 뒀다. “러시아에서는 스타니슬랍스키가 연기 전공자들의 바이블인데. 그 메소드를 가장 잘 녹아들게 하는 게 바로 체호프입니다.”
그는 체호프의 일상성을 공유하기 위해 번역·출판에도 힘쓴다. “체호프를 영어, 일어를 거쳐 우리말로 중역한 책들이 아직도 있다. 체호프를 잘 표현하려면 이런 일상어로의 번역작업이 중요하다.”
반면 이윤택은 ‘한국적인 체호프’를 지향한다. 그 출발은 스타니슬랍스키 연극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 연기론은 대단히 대륙적이고 디테일한 리얼리즘인데,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맞지 않아요.” 그는 한국인은 이탈리아, 발칸지역처럼 반도성 정서를 지녀, 굉장히 로맨틱하고 감성적이라고 했다. 따라서 스타니슬랍스키처럼 ‘생각하는 연극’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이윤택은 대신 삶의 희극성에 방점을 찍는다. “체호프도 ‘내 작품은 희극’이라고 했는데 왜 근엄해야 하나? 시트콤처럼 봐주길 바란다.” 이윤택과 연희단거리패의 체호프 작품은 앞으로도 이어진다. 3월 배우인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연출을 맡는 <갈매기>를, 8월 극단 가마골이 제작하는 <체홉의 단편소설은 이렇게 각색된다>를 올릴 예정이다. 모두 전훈 번역이다.
<잉여인간 이바노프>는 4월12일까지 서울 아트씨어터 문. (02)3676-3676. <바냐삼촌>은 이달 15일까지 서울 게릴라소극장. (02)763-1268. <체홉, 여자를 읽다>는 3월1일까지 서울 세실극장. (02)742-7601.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모스크바 연극대 유학파답게
스타니슬랍스키 연기론 바탕
‘잉여인간 이바노프’ 세세하게 ‘한국형 체호프’ 이윤택 연출
대륙적 리얼리즘 버리고
한국적 로맨틱 감성 살려
‘바냐 삼촌’ 희극성에 방점
올 연초부터 안톤 체호프의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전훈 연출의 <잉여인간 이바노프>는 극사실주의를 표방하였다. 애플씨어터 제공
지난해 안톤 체호프 서거 110주년을 맞아 올해 들어 체호프의 작품들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무대에 많이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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