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작가의 전시장. ‘중간유형’으로 이름붙인 인조짚풀 조형물 두점이 보인다. 왼쪽은 외발사자춤, 오른쪽은 보로부두르 사원을 본떠 만들었다. 뒤쪽 벽에 걸린 평면작품은 보안무늬가 인쇄된 편지봉투 조각을 콜라주해 붙인 ‘신용양호자 #240’.
아쉬움 남긴 ‘코끼리를 쏘다…’ 전
설치 작가 양혜규 리움서 개인전
짚풀로 만든 민속적 조형물 등
최근작서 초창기 작품까지 총망라
분산된 공간에 맥락없이 흩어져버려
설치 작가 양혜규 리움서 개인전
짚풀로 만든 민속적 조형물 등
최근작서 초창기 작품까지 총망라
분산된 공간에 맥락없이 흩어져버려
10년 전 건축거장 렘 쿨하스가 지은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기획전시실은 전시하기 까탈스럽기로 소문났다. 국내 작가들 누구나 선망하는 공간이라 기회를 잡기 어렵고, 전시하려해도 제대로 차려내기 쉽지 않은 공간이라는 뜻이다.
기획전시실은 떠있는 듯한 검은 콘크리트 전시실 ‘블랙박스’와 이 구조물에 눌린 얼개의 아래층 그라운드갤러리로 나뉜다. 전시공간이 상하층 곳곳에 분산돼, 작품 배치와 관객 동선 짜기가 여간 어렵지않다고 한다. 특히 블랙박스는 원래 미디어아트 전시를 염두에 둔 방으로, 미술판에서는 ‘블랙홀’이라고도 부른다. 명쾌하게 전시 개념을 잡고 작가의 의지를 관철하지 않으면 난해한 공간 안에서 종잡기 어려운 백화점 전시가 되기 십상인 까닭이다.
5년 만에 이곳에 차려진 스타작가 양혜규(44)씨의 세번째 국내 개인전 ‘코끼리를 쏘다 象(상) 코끼리를 생각하다’는 이런 블랙홀의 미로를 피해가지 못한 반쪽 회고전이다. 20여년간 세계미술판을 누비면서 겪은 유목민적 체험과 기억들을 일상사물을 동원한 서사적 설치작품 속에 표출해온 것이 작가의 특장인데, ‘회고전’이라는 틀거지 속에 갇힌 신구작들은 제품설명회장처럼 박제화된 느낌이 먼저 온다. 2000년대 이래 베네치아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 아트바젤 등에 한국 대표작가로 출품했고, 서울, 부산, 광주 등의 국내 비엔날레도 섭렵한 출중한 경력에 비춰 이번 기획의 완성도는 뜻밖이다.
양 작가의 유력한 작품소재는 체험이다. 70~80년대 산업화시대 국내의 유년시절과 90년대 독일 유학 이래 오랜 해외 작업 경험이 그 태반이 된다. 국제작가로서 겪은 숱한 이동과 외로움의 기억들, 한국과 서구 삶의 간극을 그는 블라인드, 옷걸이 행거 등의 색다른 설치작품에 개념적으로 체화해 표현해왔다. 2006년 폐가가 된 인천 사동 옛 외가집에 방울등과 조형물 등을 놓고 벌인 설치작업도 그런 맥락이었다. 경험에서 길어낸 핍진한 기억들을 다기한 일상사물에 은유와 상징을 입히는 세련된 방식으로 물화시켜낸 역량이 그의 국제적 성가를 높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전시제목은 조지 오웰의 수필 <코끼리를 쏘다>에서 사냥꾼에 의해 살해되거나 로맹 가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에서 자연의 수호자처럼 등장하는 코끼리의 상징적 의미에 착안한 것이다. 자연과 문명의 조화를 상징하는 이런 전시의 거대담론을 풀어낼 매개체로 작가는 세계 곳곳에서 쓰이는 짚을 이용한 민속적 조형물을 나름의 상상력과 감성으로 창작해냈다. 푸석한 인조짚으로 인간, 연꽃들의 형상과 마야 피라미드, 인도네시아 보르보두르 불교사원 같은 건축물들 모형을 짚으로 짜서 자연과 조응한 인간의 보편적 감성을 표출한 것이 신작의 핵심이다. 공동체와 개인이 넉넉하게 공존하는 방식을 고민해온 작가의 성찰이 새 지평으로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늘진 그라운드갤러리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집중부각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리움 기획자들은 기존의 작업들과 근작들을 명품점처럼 구역별로 배치하는 데 치중한 기색이다. 처분하지 못한 초창기 작품을 뒤샹의 작품상자처럼 포장한 채 만든 ‘창고 피스’(2004)나 옷걸이 행거에 전구, 일상용품들을 주렁주렁 내건 ‘서울 근성’(2010) 등은 신작과는 별개의 잡화처럼 놓여있을 뿐이다. 거장 솔르윗의 설치작업을 변주한 대형 블라인드 설치물까지 들머리에 매달린통에 관객들은 혼돈에 빠질 공산이 크다. 9일 언론설명회에서 “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전시를 하고싶다”고 말한 작가는 이날 하루내내 배앓이를 했다고 한다. 12일부터 5월10일까지. (02)2014-6901.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삼성미술관리움 제공
양혜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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