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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세상이 버린 남자, 그에게 짓밟힌 여자

등록 2015-02-17 20:26

극단 노을의 10주년 기념작 <보이첵>은 약자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인간 사회의 폭력성을 고밀도로 그려낸다. 불륜녀로만 치부했던 보이첵의 아내 마리를 가장 약자로 보는 새로운 해석도 눈에 띈다. 여기에 인건비를 출자방식으로 계약하는 제작방식의 실험도 주목할 만하다. 극단 노을 제공
극단 노을의 10주년 기념작 <보이첵>은 약자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인간 사회의 폭력성을 고밀도로 그려낸다. 불륜녀로만 치부했던 보이첵의 아내 마리를 가장 약자로 보는 새로운 해석도 눈에 띈다. 여기에 인건비를 출자방식으로 계약하는 제작방식의 실험도 주목할 만하다. 극단 노을 제공
극단 ‘노을’ 10돌 기념 연극 ‘보이첵’
권력에 시달리다 동거녀 죽이는
‘사회적 약자’ 말단 소총수 보이첵
이번 작품선 동거녀가 가장 ‘약자’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보이첵 그려
내용적 실험에 제작방식도 바꿔
최저생계비 기준 표준인건비 첫 적용
한 편의 연극에 두 편의 실험이 담겼다. 극단 ‘노을’의 10주년 기념작 <보이첵>이다. 하나는 내용적 실험, 하나는 제작방식의 실험이다. 두 실험 모두 또 다른 10년을 내다보는 극단의 미래를 가늠할 지표다.

<보이첵>은 19세기 초 독일의 요절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가 내연녀를 살해한 실존인물을 소재로 썼다. 약자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폭력성을 고밀도로 그려낸 이 작품은 연극·영화·오페라는 물론,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뮤지컬로도 무대에 올랐다. 등장인물들은 말단 소총수 보이첵을 끊임없이 조롱하고 괴롭힌다. 의사는 보이첵을 생체실험의 도구로 삼고, 중대장은 보이첵에게 불법적인 일을 강요하며, 남성적인 매력을 지닌 군악대장은 보이첵의 동거녀 마리를 범한다. 결국 착란증세까지 보인 보이첵은 마리를 죽인다.

이때까지 작품들에서 그려진 보이첵은 권력에 짓밟힌 가장 약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불륜녀 마리가 가장 약자다. 가히 ‘마리의 사면복권’이라 부를 만하다. 이것이 이 연극의 ‘첫번째 실험’이다.

<보이첵>의 한 장면.  극단 노을 제공
<보이첵>의 한 장면. 극단 노을 제공
왜 이렇게 해석을 바꿨을까? 최근 서울 충무로역 부근 연습실에서 오세곤 연출을 만나 물어봤다. “이때까지 해석은 불륜을 저지른 마리가 잘못을 뉘우치는 장면을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보이첵은 회개를 했음에도 마리를 죽이고 만다. 보이첵이 사회적 약자이긴 하지만 그 순간 자신도 가해자가 된다. 드라마투르그인 장은수 한국외국어대 교수와 토론을 거쳐, 또다른 피해자 마리가 가장 약자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 가해를 당한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복합적 구조는 연극을 더 풍요롭게 한다. 구조는 강화하되, 곁가지는 과감하게 쳐냈다. 오세곤 연출은 이 작품을 ‘가장 쉽고, 가장 짧고, 가장 강렬하게 만들겠다’고 벼른다.

‘두번째 실험’은 출자형 제작방식의 모색이다.

<보이첵>은 표준인건비를 시범적용하는 첫번째 연극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인복지재단이 준비중인 표준인건비는 배우와 스태프의 적정 인건비를 산정해 연극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됐다. 이 연구용역의 책임연구원이었던 오세곤 연출은 제도의 배경을 설명했다. “2011년 예술인복지법에 따라 불공정거래를 금지한 이후 실태조사 등을 통해 표준인건비를 산출했다. 기획사와 국공립 단체가 제작하는 영리 공연은 최저임금제를 적용했다. 또 동인제 극단이 제작하는 비영리 공연은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 기준을 ‘노을’과 같은 동인제 극단 배우에게 적용해보자. 정부가 고시한 2015년 최저생계비(월 61만7281원)의 1년치는 740만여원. 1년에 네 작품을 한다고 치면, 한 작품엔 180만원이다. 물론 배우 경력, 배역 비중 등에 따라 차등을 둔다.

하지만 연극에서 수익을 내기 힘든 비영리 극단의 경우, 표준인건비를 다 현금으로 주기는 힘들다. 그래서 일부는 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극단 지분으로 나눠준다. 수익이 나면, 이 지분에 따라 배분한다. 오세곤 연출은 이 제도가 동인제 극단이 제대로 정착하느냐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연극에는 김인수(의사), 박우열(중대장), 신동선(보이첵), 한설(마리), 유일한(악대장) 등이 출연한다. 이달 26일~3월8일 서울 대학로 노을소극장. (02)921-9723.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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