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폼페이 기획전에 나온 정원이 그려진 로마시대 벽화.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설 명절에는 누구나 가족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올해 설 연휴를 맞는 미술관, 화랑가의 화두도 ‘사람과 가족’이다. 국민화가 이중섭(1916~1956)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와 은지화들이 처음 전시장에 나왔고, 지난 시절 이땅의 살아가는 풍경을 담은 박수근(1914~1965)과 이응노(1904~1989)의 드로잉, 농민화가 밀레의 걸작 등 가족끼리 훈훈하게 둘러볼 만한 전시가 유난히 많다.
첫손에 꼽는 전시는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의 ‘이중섭의 사랑, 가족’ 전(02-2287-3591)이다. 1952년 생활고로 일본인 부인과 자식들을 일본에 보낸 뒤 다시 만날 날만 기다리며 애타는 마음으로 적고 그렸던 거장의 미공개 편지 20여점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 소장품을 비롯한 은지화 걸작들이 사후 60년만에 처음 관객들을 만나는 자리다. 오직 혈육에 대한 사랑으로 삶을 지탱했던 가난한 화가의 따뜻한 마음을 부인 마사코와 두 아들에게 보냈던 편지그림과 글을 통해 느껴볼 수 있다. 생전 마사코와의 연애 시절 나눈 엽서그림, 가족들과 따뜻한 남쪽 나라로 이사가는 광경을 떠올리며 그린 ‘길 떠나는 가족’ 등의 작품들도 인간적 감동을 안겨주는 걸작들이다. 전시장 한켠에서는 이중섭과 마사코의 만남과 이별을 담은 일본 다큐영화 <이중섭의 아내-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의 축약본도 틀어주고 있다. 지난달 6일 개막한 이래 25일만에 관객 2만명을 넘긴 화제의 전시다. 22일 끝낼 예정이었으나,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 덕분에 3월1일까지 전시를 연장했다.
현대화랑 전시에서 선보이고 있는 이중섭의 그림편지. 도판 현대화랑
이중섭과 쌍벽인 또다른 국민화가 박수근의 소박한 드로잉 작품들도 나왔다. 서울 관훈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 차려진 ‘가나아트컬렉션’ 전 (02-2075-4488)에서는 아낙네와 시장풍경, 소 등을 그린 그의 견실한 연필 소묘 작품 30여점을 전시중이다. 인간추상으로 유명한 거장 이응노가 30~50년대 사생한 옛 서울 시내와 사람들의 일상 풍경을 담은 미공개 스케치 등도 눈맛을 다시게 한다. 설 당일 휴관.
외국 거장 전시로는 농민화가 밀레(1814~1875)의 수작들을 내건 ‘밀레, 모더니즘의 탄생’ 전(1588-2618)을 꼽을 만하다.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에 반 고흐가 숱하게 모방해 그린 ‘씨뿌리는 사람’을 비롯해 ‘양치기 소녀’ 등 20여점의 작품들이 나와 자연주의 거장의 면모를 엿보게 한다.
방대한 전시규모를 자랑하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빼놓을 수 없는 나들이 길목이다. 1900여년전 화산재 파묻힌 폼페이의 다채로운 생활상을 생생한 유물들로 보여주는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 전을 비롯해, 체코 보헤미아 유리공예의 걸작들을 내놓은 특별전, 첨단 진열장으로 새단장한 금속공예실의 전통 명품들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탑골공원의 ‘백탑’(원각사지 10층석탑) 주위에 살았던 18세기 북학파 조선 지식인들의 발자취를 살펴본 서울역사박물관의 특별전 ‘탑골에서 부는 바람’(02-724-0274)과 청바지에 얽힌 역사와 일화들을 조명한 국립민속박물관(02-3704-3114)의 기획전 ‘청바지’도 눈길을 끄는 전시들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현대화랑, 국립중앙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