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로이트 영웅’ 사무엘윤이 이번엔 ‘광야의 외침’을 들려준다.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윤이 맡은 구약성서 속 선지자 엘리야는 성경을 넘어 현대형 인물로 거듭난다. 그는 멘델스존의 ‘숨은 명작’인 오라토리오 <엘리야>에서 타이틀롤을 맡았다. 이 작품의 예술감독인 성시연은 사무엘윤한테 ‘이 시대에 필요한 의지형 인물’로 엘리야를 표현하도록 주문한다.
“엘리야는 멘델스존 거의 마지막 대작이고, 오페라 못지 않는 드라마틱한 구성 요소를 가진 오라토리오입니다. 성경적인 인물로 선지자의 측면도 있지만,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물, 그러니까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굽히지 않은 사람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성시연이 이끄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다음달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엘리야>를 올린다. 경기필 예술단장 취임 1주년을 맞는 기념연주회다.
성시연은 23일 <한겨레>에 이번 작품을 설명했다. 멘델스존의 <엘리야>는 헨델의 <메시아>, 하이든의 <천지창조>와 함께 오라토리오의 3대 걸작으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 무대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작품이다. <엘리야>는 구약성서의 <열왕기>에서 제재를 따왔다. 예언자 엘리야를 중심으로 야훼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성시연이 그리는 엘리야는 좀 다르다. 번민을 가졌지만 강인한 인간의 모습이다. 성시연의 구상은 사무엘윤이 주역이기에 가능하다.
“사무엘윤은 현재 활동하는 성악가 가운데 최고의 기량과 표현방법을 가진 분입니다. 이번 작품에서 오케스트라도 중요하지만, 성악가가 가장 중요하잖아요. 사무엘윤이 보여줄 엘리야에 기대가 커요. 바그너(의 작품)에서 보여줬던 역할보다도, 엘리야를 통해 지치지 않고 싸운 사람의 강인한 모습을 더 잘 보여줄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사무엘윤은 ‘바그너 전문 가수’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오페라 가수로서 그에게 가장 큰 성취를 안겨준 작품이다. 그는 바그너의 성지로 불리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2012년 이 작품의 타이틀롤을 꿰찬 뒤 해마다 같은 배역으로 출연하며 바그너 전문 가수로 존재를 뚜렷이 각인시켰다.
또 ‘동양인이 소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중 2부 ‘발퀴레’의 보탄 역도 충분히 소화했다. 성시연은 그런 그의 역량이 엘리야에서도 자연스레 발휘될 것으로 본다.
사무엘윤이 표현해야 할 엘리야는 어떤 모습일까? 성시연은 “엘리야는 인간의 모든 번뇌나 고뇌를 가진 인물이죠. 연약함 플러스 강인함, 컴플렉스 플러스 도전정신 등 모든 것이 다 합쳐진 인간이라고 보거든요.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이는 사무엘윤 외에는 별로 없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지난해 성시연이 경기필 예술단장에 취임할 때 클래식음악 애호가들은 ‘한국 최초의 국·공립 오케스트라 여성 상임지휘자 탄생’을 주목했다.
성시연은 지난 1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취임연주인 3월27일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꼽았다. “이 직책을 맡으면서 제가 예산 뒷받침도 없이, ‘해외투어를 같이 가겠다’라고 단원들 앞에 내뱉었어요. 그런데 일본 도쿄에서 짧은 투어를 하게 돼, 다행히 약속을 지키게 됐어요.” 올 6월에는 경기필을 이끌고 독일 자일란트 페스티벌에 참여한다.
이번 <엘리야> 공연에는 사무엘윤과 함께 테너 김재형,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소프라노 장유리, 서울시합창단, 서울모데트합창단이 함께한다. (031)230-3322.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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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기문화의전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