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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이 작품, 98살 작가가 3년 전에 그렸다

등록 2015-02-25 18:57수정 2015-02-25 21:02

‘토종 비디오아티스트’ 박현기 회고전
만다라 연작 포르노 콜라주 등 전시

‘최고령’ 재미작가 김병기 첫 회고전
추상정신 화두로 우리땅 풍경 담아
김병기 작가의 2012년 작 ‘방랑자’.
김병기 작가의 2012년 작 ‘방랑자’.
1950년대 이래로 이땅의 현대미술 계보는 크게 두갈래 흐름을 지어왔다. 70~80년대의 벽지같은 단색조 회화로 대표되는 추상 모더니즘과 80년대 이른바 민중미술로 상징되는 리얼리즘 진영의 대립과 길항이다. 두 진영 작가들의 편벽이 심해 사이 중간지대에서 잊혀진 실력파 작가들이 적지않았다. 최근 전시 수준을 놓고 입도마에 오르내리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모처럼 중간지대의 숨은 대가들을 조명하고 있다. 40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100살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추상적 터치로 현실과 의식의 내면을 그려온 작가 김병기(98)씨와 70년대 이래 한국적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로 활동했던 고 박현기(1942~2000)의 회고전이다.

김씨의 전시 ‘감각의 분할’(3월1일까지)이 마련된 과천 본관 1전시실은 마치 청년 작가의 신작 전 같은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한국 출신 현역작가들 가운데 단연 최고령이며 출품작도 50년대부터 지금까지 60여년간의 작품들을 모았는데도, 작렬하듯 긋고그은 선들이 만들어낸 원시적 형상과 원색의 화면들에서는 관조 대신 대결과 응시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줄곧 그려온 대상인 정물과 자연, 문명, 마음 속 서정과 생각의 풍경 등이 죽죽 그은 선과 얕게 바른 원색 화면 속에서 조응한다.

그는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나 소학교 시절 국민화가 이중섭과 동문수학했고 천재문인 이상과는 일본 유학시절 같이 하숙을 했던 초창기 문화사의 산증인이다. 40년대 일본 유학시절 모더니즘 추상의 세례를 받은 그는 50년대 형상을 팽개친 유럽 앵포르멜 회화의 이미지를 깊이 흡수하며 평생 추상정신과 현실의 대비, 긴장을 화두로 삼게 된다. 6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70년대초까지 지속된 실험적 추상 작업들은 서예적 조형미가 엿보이는 선을 색면에 다기하게 부리며 자유 표현의지를 과시한 작업들이다. 풀이나 집 주위 풍경의 존재감을 추상정신에 녹여낸 70년대를 거쳐 80년대말부터 2000년대초까지는 귀국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땅의 산야와 분단현실의 풍경 등을 역사와 어우러진 화면으로 빚어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전후 모더니즘 추상이 갈래를 치며 번져나갔던 그 시절 화단사람들의 속내와 미국 거주를 선택한 뒤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각기 다른 자연을 오가면서 느꼈던 고독감, 자연과의 만남에 얽힌 단상 등이 붓선의 궤적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회고 인터뷰 영상을 틀고는 있지만, 한국미술사의 비화를 간직한 그의 삶 자체를 별도 아카이브 공간에서 조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돌들과 티브이 모니터가 어우러진 박현기 작가의 설치작품.
돌들과 티브이 모니터가 어우러진 박현기 작가의 설치작품.
국내 최초의 토종 비디오아티스트 박현기의 회고전 ‘만다라’(5월25일까지)는 얼개가 볼품이 없고 빈약하다. 2만여점의 작품·자료 등을 유족이 미술관 쪽에 기증한 터라 고인의 작품세계를 집대성하는 전시가 될 것이란 기대를 모았지만, 관객의 눈에는 90년대말 만다라 연작의 포르노영상 짜깁기 콜라주와 돌무더기 밭 속의 낡은 티브이 정도일 듯하다. 미술계는 흔히 동양적 정신성과 영상의 접맥을 꾀한 작가로 평가하지만, 일면적이다. 70년대 전위 작가들 난장이던 대구현대미술제에서 그는 물과 바위 같은 자연 질감과 영상과의 만남을 처음 구상했다. 전시는 당시 전위작가들의 화두였던 소재의 물성과 형상, 움직임에 대한 탐구를 통해 작가의 영상작업도 숙성해갔다는 맥락을 놓치고, 노장사상 같은 전통성 맥락만 강조하면서 전시는 지리멸렬한 느낌으로 변해버렸다. 또다른 패착은 거대 아카이브 공간이다. 60년대부터의 주요 작업노트, 드로잉, 개인사 기록 등을 진열장 속에 비치했으나, 시선의 높이나 조도에 대한 고려 없이 채우는데만 치중한 기색이 역력하다. (02)2188-60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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