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사이로’의 조동진이 14년 만에 신곡 ‘강의 노래’를 발표했다.
14년만에 신곡 ‘강의 노래’ 발표
1990년대 전설의 음악공동체 ‘하나음악’의 좌장 조동진(68)이 오랜 은둔에서 벗어나 모습을 드러냈다. 3일 발매하는 옴니버스 앨범 <강의 노래>를 통해 14년 만의 신곡 ‘강의 노래’를 발표한 것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홍대앞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동진은 하나음악 ‘식구’들에 둘려싸여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예전엔 거의 매일 모였었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모이니 즐겁네요.”
들국화, 신촌블루스, 김현식 등을 배출한 동아기획이 80년대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산실이었다면, 90년대에는 하나음악이 있었다. 동아기획이 빛을 잃어가던 1992년께 조동진·조동익 형제를 주축으로 일부 음악인들이 세운 하나음악은 단순한 음반사를 넘어 구성원들이 가족처럼 어울리는 음악공동체였다. “이런 곳이 하나쯤은 있어야겠다 싶어 겁 없이 만들었어요.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고, 우리가 좋아하면 남들도 좋아하겠거니 했죠.”
90년대 빛내던 ‘하나음악’ 좌장
다시 문 연 ‘푸른곰팡이’에서
새 옴니버스 앨범 프로듀싱
2003년 맥 끊긴 앨범 전통 이어
한동준·정원영·이무하 등 참여
“하나음악 식구들 모여 즐거워
다들 격려해줘서 힘이 났죠” 조용하지만 깊은 파장을 만들어내며 골수팬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던 하나음악은 그러나 90년대 중후반 들어 가요계가 거대 기획사 위주로 급격히 쏠리면서 위기를 맞았다. 끝내 2003년 하나 옴니버스 앨범 <꿈>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막판에는 형편이 너무 어려워져 다들 3년 동안 무보수로 일했어요. 내가 미안해서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조동진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하나음악은 2011년 ‘푸른곰팡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옛 구성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윤영배·조동희·고찬용·장필순·이규호 등이 잇따라 새 앨범을 냈다. 제주도에서 지내는 조동익도 2013년 장필순 7집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조동진은 정신적 지주 구실을 하며 모든 과정을 조용히 지켜봤다.
조동진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2년 전 새 옴니버스 앨범을 구상하면서다. 구성원들이 두루 참여한 하나 옴니버스 앨범은 1992년 첫 선을 보인 이후 2003년까지 겨울, 바다, 꿈 등을 주제로 꾸준히 발표됐다. 그 명맥을 잇고자 조동진은 강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 앨범을 만들기로 하고 직접 프로듀서를 맡아 진두지휘했다. 자신이 가장 먼저 ‘강의 노래’를 만들고 후배들을 독려했다.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에는 푸른곰팡이 옴니버스라는 타이틀이 붙지만, 사실상 하나 옴니버스 시리즈의 부활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다.
왜 하필 강일까? “강은 여러 의미로 해석하고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 소재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앨범 주제로 생각해왔다”고 조동진은 설명했다. “하나음악 식구들이 예전부터 강가로 자주 야유회를 갔거든요. 족구도 하고 닭백숙도 먹고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기억도 일조한 것 같아요.” 조동진의 막내 동생인 조동희가 옆에서 거들었다.
조동진이 80년대 발표한 포크 명곡 ‘나뭇잎 사이로’에서 선보였던 묵직한 중저음은 ‘강의 노래’에서 더욱 깊어졌다. 나지막한 독백처럼 시작된 노래는 묵묵하지만 힘차게 흐르는 강물처럼 굽이쳐 동료들의 코러스와 만난다. 하나음악 부활의 완성을 알리는, 조용하면서도 웅장한 사자후다.
두 장의 시디로 이뤄진 앨범에는 모두 15곡이 담겼다. 2분이 넘는 장엄한 전주로 시작하는 첫 곡 장필순의 ‘엄마야 누나야’와 두번째 곡 조동익의 ‘오래된 슬픔 건너’는 사실상 한 곡처럼 이어진다. 둘을 더하면 8분이 넘는 대곡을 끝까지 긴장감 있게 끌어가는 조동익의 편곡이 발군이다. 조동익이 직접 노래를 부른 것도 14년 만이다.
‘오랜만’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곡들이 더 있다. ‘사랑의 서약’으로 유명한 한동준은 12년 만의 신곡 ‘당신은 그렇게 흘러’를 내놓았고, 하나음악 초창기 멤버였던 정원영과 이무하는 20여년 만에 돌아와 각각 ‘새는 걸어간다’와 ‘돛’으로 참여했다. 정원영은 “이 프로젝트 얘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이 앨범을 계기로 다같이 분발하고 부지런히 활동해 튼튼한 회사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히, 송용창, 새의 전부 등 새롭게 하나음악 식구가 된 얼굴도 눈에 띈다. 여성 듀오 ‘새의 전부’는 막내 격이다. 멤버 이원혜는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하다 교수님 추천으로 조동진 앨범을 듣고 하나음악에 빠져들게 됐다. 푸른곰팡이로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디션을 봤다”고 했다. 그는 “오랫동안 존경해온 선배님들과 음악과 삶을 이야기할수록 꼬맹이 같은 우리를 동료로 격려하고 존중해준다는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색다른 시도를 한 곡도 돋보인다. 오소영은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와 함께 한국적 정취를 머금은 ‘흐르는 물’로 음악적 지평을 넓혔다. 이규호는 ‘시냇물’로 아카펠라에 도전했다. 혼자서 모든 목소리를 덧입혀 녹음했다. “각자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 사이에서 나도 뭔가 새로운 걸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경쟁심이나 긴장감이 전혀 안 들었는데, 앨범에 누가 돼선 안된다는 생각에 점차 긴장하게 되더라”고 그는 말했다.
조동진은 “오랫동안 함께한 가족 같아서 경쟁심 같은 건 생각보다 덜했다. 다만 내 곡이 민폐가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창피했다. 그래도 다들 격려해줘서 힘이 났다”고 했다. 1996년 5집 이후 새 앨범을 내지 않은 그에게 신보 계획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내야죠. 평생 해온 일인데.” 옆에서 “좋은 곡 많이 만들어놓으셨어요”라는 귀띔이 경쟁적으로 쏟아졌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푸른곰팡이 제공
다시 문 연 ‘푸른곰팡이’에서
새 옴니버스 앨범 프로듀싱
2003년 맥 끊긴 앨범 전통 이어
한동준·정원영·이무하 등 참여
“하나음악 식구들 모여 즐거워
다들 격려해줘서 힘이 났죠” 조용하지만 깊은 파장을 만들어내며 골수팬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던 하나음악은 그러나 90년대 중후반 들어 가요계가 거대 기획사 위주로 급격히 쏠리면서 위기를 맞았다. 끝내 2003년 하나 옴니버스 앨범 <꿈>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막판에는 형편이 너무 어려워져 다들 3년 동안 무보수로 일했어요. 내가 미안해서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조동진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옴니버스 앨범 ‘강의 노래’ 에 참여한 음악인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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