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연출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초연한지 45년, 산울림 소극장을 세운 지 30년을 맞아, 역대 배우 13명이 출연하는 기념공연을 마련한다. 1990년 아일랜드 더블린 초청공연 때 정동환(오른쪽 두번째)과 송영창(오른쪽 세번째)이 출연했다. 산울림 소극장 제공
임영웅 연출 ‘초연 45돌’ 기념공연
정동환 등 역대배우 13명 총출동
‘한국판 고도’ 반세기 역사 갈무리
한명구, 20년간 750여번 최다출연
정동환 등 역대배우 13명 총출동
‘한국판 고도’ 반세기 역사 갈무리
한명구, 20년간 750여번 최다출연
앙상한 나무 한 그루 아래 두 남자가 서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린다. 하지만 장소와 시간은 맞는지, 고도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들은 50년 가까이 기다렸다. 포조와 러키가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다. 해질 무렵 고도의 전령인 소년이 “고도가 오늘은 못 오고 내일은 꼭 온다”는 소식을 전한다. 사무엘 베케트(1906~1989)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다. 이 연극은 1969년 한국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생소한 작품인데도 대박이 터졌다. “한창 연습 중일 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베케트가 발표됐다. 책은 내용이 어려운데, 마침 연극이 올라가니까 공연 일주일 전에 표가 다 팔렸다.” 임영웅 연출이 지난해 <한겨레>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임영웅 연출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초연한지 45년, 산울림 소극장을 세운 지 30년을 맞아, 역대 배우 13명이 출연하는 기념공연을 마련한다. 정동환. 송영창, 한명구, 박용수, 안석환, 박상종, 이호성, 이영석, 김명국, 정재진, 정나진, 박윤석 등 12명과 3년 연속 출연하는 아역 김형복이다. 13명을 통해 ‘한국판 고도’의 45년 역사를 갈무리한다.
■ 정동환 “처음 하는 연극처럼 대사 왼다”
임영웅은 지난해 연출 인생 60년을 맞았다. 반세기 넘도록 정극과 뮤지컬을 넘나든 이력 자체가 한국 연극사다. 그의 연출 이력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정점을 이룬다. 8차례 해외공연, 초연 이후 각종 연극상 13회 수상, 20여 차례 산울림 소극장 정기공연 등 이 작품은 연극 인생의 숙명적인 동반자다. 불문학자인 아내 오증자는 임영웅의 인생 동반자이자 연극 동반자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번역자이며 무대화의 기획자로서 활동했다.
오랜만에 임영웅 연출과 함께 무대에 서는 배우들의 마음가짐은 남다르다. 블라디미르 역을 맡았던 정동환은 “처음 만난 작품처럼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새롭게 하고 있다”고 했다. 에스트라공 역을 맡아 아이디를 에스트라공(ESTRA0)으로 쓰는 안석환은 “임영웅 선생님은 죽을 때까지 기억될 연극계 은사님이시다”라며 “15년 만에 하는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니, 기대와 긴장이 동시에 된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역을 맡았던 한명구는 “임영웅 선생님께 감사하는 헌정의 마음과 축제라는 신명으로 최선을 다하자”고 했다.
포조 역을 맡았던 김명국은 임영웅과 오증자에게 특별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1993년 산울림 소극장 맞은편 포스트극장에서 이호성 연출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공연을 두 분께서 관람하러 오셨다. 단지, 김명국 나를 포조로 캐스팅하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명구 “공연 중 배우가 퇴장하다니…”
정동환에게 <고도를 기다리며>는 25년 주기로 찾아오는 작품이다. “1965년에 처음 연극을 시작해 25년 되던 1990년 첫 공연 이후, 25년이 지난 올해 다시 무대에 선다.” 하지만 1990년 공연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당시는 금·토·일요일 모두 2번씩 공연했다. 체력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공연 시작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땀이 비 오듯 흘러 넥타이 끝으로 땀이 뚝뚝 떨어졌다. 공연시간도 160분이나 됐다.”
안석환에게 이 작품은 “최고 많이 한 공연”이다. 그도 정동환처럼 아찔한 기억이 있다. “허리띠가 안 끊어져서 진짜 목을 맬 뻔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배우가 바로 한명구다. 그는 이 작품에만 20여 년간 750여번 출연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상을 받고, 성장하고, 아픔을 겪고…. 그래서 이 작품은 내게 삶의 선물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걸맞게, 아무리 기다려도 상대배우가 오지 않는 ‘부조리한 사건’도 있었다. “공연 중에 상대배우가 급한 용무(생리현상)로 인해 무단 퇴장하는 바람에, 그분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느라 무대를 숨이 차도록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정말, 고도(상대배우)를 기다린 것이다.”
이 연극은 오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서울 산울림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02)334-5915. ‘연출가 임영웅과 고도를 기다리며’ 아카이브전도 열리고 있다. 5월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 2층 예술자료원 전시실. (02)524-9419.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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