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비디오아트 거장 빌 비올라…압도적이다, 영상 속 직관

등록 2015-03-05 19:03수정 2015-03-05 21:56

지난해 세인트폴 성당에 설치된 영상작품 <순교자(흙, 공기, 불, 물)> 연작. 사진 국제갤러리 제공
지난해 세인트폴 성당에 설치된 영상작품 <순교자(흙, 공기, 불, 물)> 연작. 사진 국제갤러리 제공
’비디오아트 거장’ 빌 비올라 세번째 한국전시
미국의 비디오아트 거장 빌 비올라(64)는 시간을 덩어리처럼 주무르는 장인이다. 시간을 질료 삼고 직관을 녹여넣어 우주와 세상, 인간에 대한 영상을 뽑아낸다. 도공이 흙을 빚어 도자기를 만들어내듯, 작가는 시간을 빚어내 눈을 압도하는 스펙터클을 만든다.

비올라의 영상은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을 뒤집어쓰거나, 흙더미에 깔리거나 불꽃의 바다 속에 잠기는 인간의 몸들을 비춘다. 그 몸들의 움직임은 시간을 거슬러 되감기는 기묘한 영상 속에서 실체를 드러낸다. 작가에게 시간은 “우리의 영혼과 세상 내면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감춘 인간의 창조물”이며, 인간과 세계의 심오함을 체험하는 창구다. 영상기술은 시간을 손에 만질 수 있는 재료로 바꿔주는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비올라의 손을 탄 영상 속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가거나, 혹은 지극히 천천히 흘러간다. 역류되는 시간 속에서 고통과 고독에 휩싸인 인간 군상들이 부유하듯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하는 것이다.

한국전시 때마다 큰 반향을 일으켰던 빌 비올라의 세번째 한국전시가 5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막을 올렸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려 세계적 주목을 받은 회고전 작품 일부와 영국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에 성화 개념으로 설치되어 화제를 낳은 신작들 일부가 나와 진작 입소문이 퍼졌던 전시다.

전시장의 빌 비올라와 부인 키라 페로브. 그들 위로 ‘밤의 기도’ 영상이 보인다.
전시장의 빌 비올라와 부인 키라 페로브. 그들 위로 ‘밤의 기도’ 영상이 보인다.
시간의 흐름을 주물러 만든
우주·인간에 대한 그의 영상
지순한 욕망·휴머니즘 등 형상화
작년 세인트폴 성당에 설치한
‘순교자 연작’ 일부도 출품

실제로 5일 낮 찾은 전시장은 명불허전이었다. “시간을 명백한 물질로 경험해왔다”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듯 취재진에 먼저 선보인 신작들은 우리 삶에서 시간이 차지하는 본질을 드라마틱한 연출과 구도로 드러낸다. 먼저 눈길을 잡아끄는 작품은 갤러리 3관에 선보인 세로 5m 넘는 대형 영상물 ‘도치된 인생’이다. 검은빛·붉은빛·하얀빛 물을 선채로 번갈아 흠뻑 뒤집어쓰는 남자의 변화하는 모습을 시간대를 역류하는 화면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탄생과 성장, 죽음에 이르는 인생여정의 불가사의한 단면들이 긴장감 넘치게 재구성된 역작이다. 지난해 세인트폴 성당에 설치된 영상작품 <순교자(흙, 공기, 불, 물)> 연작 일부(사진)인 갤러리 2관의 출품작은 파괴와 고통의 상징이자, 인간의 불가사의한 인내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물의 이미지를 이야기한다. 서있던 사람이 발에 밧줄이 묶여 들려지면서 위에서 폭포처럼 떨어져내리는 물을 맞는 그로테스크한 영상들은 신념 자체를 위해서 인내하고 희생하는 인간 휴머니즘에 대한 오마주로 비친다.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영상에 들어간 <밤의 기도>는 물대신 불이 상징이 된다. 수많은 등잔을 켜는 여인과, 불바다를 뚫고 전진하는 남성을 대비시키면서 삶을 초월해 사랑과 영원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지순한 욕망을 형상화해냈다.

백남준의 조수였던 빌 비올라는 비물질적인 비디오아트를 중후하면서도 대중적인 시각장르로 재창조했다. 비올라의 영상들이 연극무대처럼 시각화되고 뭉클한 성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는 건, 영상 속 인간들이 물, 불 등의 제약을 뚫고 끊임없이 상승, 하강하거나 전진, 후진하는 특유의 역동성을 띠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여름 사막을 걷는 풍경인 <조상>과 황야에서 각자 다른 길을 가던 두 여인의 만남을 담은 <조우> 등 갤러리 2관의 소품들에서 이런 특유의 작가적 스타일을 뜯어보는 것도 좋겠다.

테크놀로지와 영혼의 교감을 모색해온 비올라의 작업들은 기술격변의 시대 우리들 감성이 어디로 흘러갈지를 어림해보는 흥미로운 체험이기도 한 까닭이다. 5월3일까지. (02)735-8449.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