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인보다 더 이탈리아적이다.” 세계적인 지휘자 넬로 산티는 오페라가수 테너 박성규를 이렇게 불렀다.
이탈리아 관객에게는 발음은 기본이고, 노랫말의 아름다움과 감정 전달이 중요하다. 박성규는 명징한 미성과 강렬한 표현력을 자랑한다. 그런 점에서 산티의 말은 극동에서 온 성악가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다.
지난 1월 박성규는 이탈리아 나폴리 산카를로 국립극장에서 산티 지휘로 <안드레아 셰니에>의 타이틀롤을 맡았다. 그는 국립오페라단 2015년 시즌 개막작 <안드레아 셰니에>에서 다시 주역을 꿰찼다. 지난 4일 서울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서 박성규를 만났다.
“셰니에는 군인이자 시인이었어요. 실존인물이 쓴 시를 반영했기 때문에 작품에 현실감이 살아있어요. 제 첫번째 아리아는 여주인공 ‘마달레나’가 즉흥시를 읊어보라고 해서 부른 거에요. 그런데 내용은 시지만, 사랑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귀족들은 먹고 마시는데, 민중들은 죽어가고 있다’라는 내용입니다.” 박성규는 작품과 주인공의 성격을 설명했다.
움베르토 조르다노 작곡의 이 작품은 프랑스대혁명에 가담했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실존인물 셰니에를 그렸다.
신화 속 영웅이나 귀족의 연애를 다룬 기존 오페리와 달리, 현실(veri)을 반영해 사회의 참상 등을 고스란히 담은 ‘베리스모(Verismo) 오페라’의 대표작이다. 셰니에 역은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 ‘3대 테너’도 출연했던 테너 필수 레퍼토리다.
시적 표현과 현실을 담다 보니 부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압권으로 평가받는 셰네에와 마달레나의 이중창은 어렵기로 소문났다. 바로 ‘우리의 죽음은 사랑의 승리’(La nostra morte)라는 아리아다. “도밍고도 반음을 낮춰서 불렀는데, 저는 오리지널대로 부릅니다.” 도밍고가 1978년 녹음한 제임스 레바인 지휘의 <안드레아 셰니에>는 명반으로 꼽힌다.
성악의 본고장에서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무명시절이 있었다. 구제금융의 한파가 몰아치던 1999년 그는 베르디 국립음악원 유학길에 올랐다.
스칼라극장 출신의 움베르토 그릴리에게 레슨을 받았는데, 돈이 바닥나 레슨비가 13번이나 밀렸다. 콩쿠르에 도전했지만 좌절을 거듭했다. 몇 군데 입상에 이어 마침내 2005년 마르세유 오페라 국제콩쿠르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거머쥔 뒤, 한꺼번에 밀린 레슨비를 갚았다.
성악가들의 성공담 뒤에는 늘 ‘대타 홈런’이 있다. “갑자기 로마 오페라극장에서 연락이 왔어요. 테너가 펑크를 낸 거죠. <라 조콘다>는 엄청 긴 작품인데, 그걸 5일 만에 하루 10시간씩 외워 바로 리허설에 들어갔어요.”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는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우뚝 섰다.
다음달엔 독일 킬오페라극장에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10월엔 카타니아 마시모 벨리니극장에서 <삼손과 데릴라> 무대에 오른다.
12~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6-5284.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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