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사를 다룬, 전소정 작가의 신작 <사신>(死神).
전소정 개인전 ‘폐허’…영상들 선봬
박제사 등 타인의 삶에 작가 투영
박제사 등 타인의 삶에 작가 투영
젊은 작가 전소정씨가 찍은 영상 속에는 한결같이 무언가 만들거나 캐내는 장인들이 나타난다. 푸른 바닷속으로 기포를 일으키며 자맥질해가는 해녀 할머니의 뒤태와 죽은 새의 사체에 깃털과 인공 눈알을 다듬어 끼워넣는 박제 작업의 공정이 펼쳐진다. 빼어난 수석을 찾으려고 강과 계곡의 돌밭을 뒤집는 수석가의 달그락거리는 움직임과 수집한 돌의 세부를 찍은 장면도 보인다. 그들의 작업은 기이할 정도로 정교하거나 아름답게 연출된 배경 화면 속에서 시적인 텍스트와 함께 부유하듯 흘러간다. 서울 연지동 두산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전 작가의 개인전 ‘폐허’에 나온 이 작품들은 예술가로서 작가 자신의 태도와 사유를 투영한 일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전씨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타인의 삶과 이야기 속에 작가의 정체성, 체험을 투영하는 영상기록을 줄곧 만들어왔다. 2009년부터 제작한 영상들 속에는 줄광대, 기계자수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치열한 생업 과정이 연극 무대처럼 펼쳐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의 삶과 작업을 생업 차원을 넘어 예술의 경지로 바라보며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그 위에 포개놓으려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과 의지가 느껴진다. 박제사를 다룬 신작 <사신>(死神)이 대표적인 작품인데, 죽은 동물의 사체에 인공적인 생기를 불어넣어 그들의 삶을 역으로 빚어내는 작업 과정을 통해 사회의 폭력성과 무력한 예술가의 비애감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영상은 기억을 기록하는 매체지만, 전씨의 영상은 기록성을 넘어 타자의 삶에 개입한 예술가의 내밀한 감성과 사유를 드러내는 표현적 수단에 더 가깝다는 점이 흥미롭다. 4월4일까지. (02)708-505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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