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연극상, 김동훈연극상을 거머쥔 ‘배우’ 김소희가 이번엔 연출을 맡았다. 그가 맡은 안톤 체호프 원작의 <갈매기>는 “배우가 연출하는 배우를 위한 연극”을 표방한다. 김용주 작가 제공
“이윤택 스스로 자신의 ‘페르소나’라고 고백한 김소희는 <혜경궁 홍씨>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 이윤택은 김소희라는 큰 배우가 있었기에 <혜경궁 홍씨>을 착상했는지도 모른다.”(김미도 연극평론가)
<혜경궁 홍씨> 뿐 아니라 <고곤의 선물>, <오구> 등으로 대한민국연극상, 김동훈연극상을 거머쥔 ‘배우’ 김소희가 이번엔 연출로 변신했다. 지난 13일 막을 올린 안톤 체호프의 연극 <갈매기>가 연출가 김소희의 첫 단독 작품이다. “공동 연출은 해봤지만 혼자 하는 건 처음입니다. 이윤택 선생님이 ‘너, 이제 연출해봐라’라고 했어요. 연희단거리패 안에서 공부하고 새로운 걸 시도하는 과정으로 연출을 맡는 겁니다.” 서울 대학로 게릴라소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김소희는 배우와 연출을 겸할 생각이다. “배우 출신이 연출을 맡으면 장점이 많아요. 베르톨트 브레히트처럼 새로운 시대와 개념을 만들어가는 연출도 있지만, 자신이 경험했던 부분을 배우들과 나눠갖는 연출도 필요해요. 배우들과 친근하고, 그들 입장을 더 빨리 알아채지요.”
김소희 연출은 <갈매기>는 “배우가 연출하는 배우를 위한 연극”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에는 작가를 꿈꾸는 트레블레프, 배우를 꿈꾸는 젊은 배우 니나, 트레블레프의 어머니인 유명여배우 아르까디나, 아르까디나의 연하 애인인 작가 트리고린 등이 나온다. “주인공들과 마을의 여러 인물이 사랑관계로 얽히고설켰어요. 체호프 작품을 보통 리얼리즘이라고 하지만, 이 작품은 표현주의, 상징주의, 낭만주의 요소가 섞여 매우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연출이 뭘 넣고 뭘 빼는가에 따라 다양한 변형과 변주가 가능하다. 배우를 위한 연극인 동시에 연출을 위한 연극이기도 한 셈이다.
김소희는 연희단거리패 대표도 맡고 있다. 최근 가족이 부쩍 늘었다. 이들은 밀양연극촌에서 함께 생활한다. “80명이나 되는 단원들을 교육하려면 역할을 나눠야 합니다. 베테랑인 저와 이승헌, 김미숙 배우가 코치를 맡습니다. 저는 대사를 중심으로 하는 화술 코치, 이승헌 배우는 신체 트레이닝 코치, 김미숙 배우는 노래와 춤 등 전통연희 코치지요.”
연희단거리패는 ‘우리극연구소 연기자 훈련과정’을 운영한다.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산책과 운동을 한 뒤, 식사 시간을 빼면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연습·회의·이론공부를 계속한다. 개인주의 상향을 가진 젊은이들에겐 견디기 힘든 일과다. 처음 석달 기본훈련 뒤 작품 두 편을 하고, 여름 밀양연극제를 마쳐야 정단원 자격이 주어진다. 누구는 연희단거리패를 남사당패 같다고 하고, 누구는 사관학교나 도제 같다고 한다. 일본 도쿄대 학생들은 연희단거리패를 ‘이상주의 연극공동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연극 <갈매기>가 주는 메시지를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메시지는 없어요. 저는 관객들이 연극을 보며 잡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아, 10년 전에 만났던 그 친구가 보고 싶네’라든가 ‘아, 어제 본 그 사람이 (연극에 나오는)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었겠구나’라든가요. 딴 생각을 많이 하는, 되새김질하는 객석이 되길 바라요.”
4월 12일까지 게릴라소극장. (02)763-1268.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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