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데이나 슈츠의 그림 ‘싱어 송 라이터’.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회화 같은 강렬한 색감을 보여준다. 도판 삼성미술관플라토 제공
‘그림/그림자-오늘의 회화’전
2000년대 이래 현대미술 작품들은 갈수록 모순투성이로 변하고 있다. 20세기 워낙 많은 미술사조가 줄줄이 명멸한 탓에, 한 시대 작품들을 관통하고 휘감는 담론과 정신은 고갈됐다. 이제 작가들은 자기 작품의 오리지널리티(원본성)를 따지면서도, 숱한 대가의 명작들을 베끼고 짜깁기하는 데 정력을 쏟는다. 좋은 작품의 관건은 얼마나 독창적으로 모방과 윤색을 포장했느냐는 것. 모로 가든 도로 가든, 자기 그림자만 작품에 확실히 드리우면 된다는 생존의 논리다.
명화·인터넷 이미지 차용한
국내외 소장작가 12명 그림
상상력 덧입힌 기시감 재미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오늘날 현대미술에 횡행하는 모방의 논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는 전시를 차렸다. 19일 시작한 ‘그림/그림자_오늘의 회화’ 전은 디지털 가상이미지가 판치는 요즘 미술판에서 오롯이 붓질만 고집하는 30~40대 국내외 소장작가 12명의 아날로그적 그림들을 내걸었다. 감상의 초점은 ‘어디서 본듯’한 기시감을 곱씹는 재미다. 명화나 인터넷 이미지를 숨쉬듯 차용하고 자기 상상력을 덧입힌 출품작들 상당수에서 서구미술사 거장들의 전형적인 색감과 구도들이 겹쳐 보인다. 영국 흑인 작가인 리넷 이아돔 보아케의 어두운 인물그림들은 흑인 인물들의 배치나 몸짓, 구도 등에서 낭만주의 거장 고야나 인상파 거장 마네, 세잔의 명화 느낌들이 이리저리 포개어진다. 여기에 작가의 인종적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녹아들면서 야릇한 감흥을 일으킨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게이작가 헤르난 바스는 남성 동성애자들의 불안한 자화상을 그렸는데, 마티스나 보나르 화풍 같은 장식적인 꽃들과 소품들을 주위에 가득 늘어놓았다. 20세기초 독일 표현주의 그룹 ‘청기사파’의 날카로운 원색을 마음껏 일상 공간 이미지 속에 들이부은 듯한 데이나 슈츠의 엉뚱하면서도 강렬한 화면도 눈길을 붙잡는다. 모국 루마니아 곳곳의 평범한 일상을 17세기 베르메르의 풍경화처럼 잔잔하면서도 허무하게 묘사한 셰르반 사부, 마오저뚱 어록을 담은 거대 광고판을 분리된 알미늄 철판에 막그림처럼 그린 중국 작가 리송송, 자신이 겪는 일상의 순간들을 공들여 칠한 색면으로 박제하듯 담거나 추상적 이미지를 덧칠하는 한국작가 박진아·백현진씨의 작업들도 눈에 들어온다. 백화점, 회고전식 전시를 거듭해 답답한 미로 같다는 촌평을 받아온 플라토에서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기획전이다. 6월7일까지. 1577-759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국내외 소장작가 12명 그림
상상력 덧입힌 기시감 재미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오늘날 현대미술에 횡행하는 모방의 논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는 전시를 차렸다. 19일 시작한 ‘그림/그림자_오늘의 회화’ 전은 디지털 가상이미지가 판치는 요즘 미술판에서 오롯이 붓질만 고집하는 30~40대 국내외 소장작가 12명의 아날로그적 그림들을 내걸었다. 감상의 초점은 ‘어디서 본듯’한 기시감을 곱씹는 재미다. 명화나 인터넷 이미지를 숨쉬듯 차용하고 자기 상상력을 덧입힌 출품작들 상당수에서 서구미술사 거장들의 전형적인 색감과 구도들이 겹쳐 보인다. 영국 흑인 작가인 리넷 이아돔 보아케의 어두운 인물그림들은 흑인 인물들의 배치나 몸짓, 구도 등에서 낭만주의 거장 고야나 인상파 거장 마네, 세잔의 명화 느낌들이 이리저리 포개어진다. 여기에 작가의 인종적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녹아들면서 야릇한 감흥을 일으킨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게이작가 헤르난 바스는 남성 동성애자들의 불안한 자화상을 그렸는데, 마티스나 보나르 화풍 같은 장식적인 꽃들과 소품들을 주위에 가득 늘어놓았다. 20세기초 독일 표현주의 그룹 ‘청기사파’의 날카로운 원색을 마음껏 일상 공간 이미지 속에 들이부은 듯한 데이나 슈츠의 엉뚱하면서도 강렬한 화면도 눈길을 붙잡는다. 모국 루마니아 곳곳의 평범한 일상을 17세기 베르메르의 풍경화처럼 잔잔하면서도 허무하게 묘사한 셰르반 사부, 마오저뚱 어록을 담은 거대 광고판을 분리된 알미늄 철판에 막그림처럼 그린 중국 작가 리송송, 자신이 겪는 일상의 순간들을 공들여 칠한 색면으로 박제하듯 담거나 추상적 이미지를 덧칠하는 한국작가 박진아·백현진씨의 작업들도 눈에 들어온다. 백화점, 회고전식 전시를 거듭해 답답한 미로 같다는 촌평을 받아온 플라토에서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기획전이다. 6월7일까지. 1577-759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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