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칠기의 모습.
호림박물관 ‘조선의 나전’ 특별전
당대 유행그림 나전조각 떠
정교한 선으로 만드는 방식
장인 ‘원소스 멀티유즈’ 빛나
당대 유행그림 나전조각 떠
정교한 선으로 만드는 방식
장인 ‘원소스 멀티유즈’ 빛나
조선시대 공예장인들은 ‘원 소스 멀티유즈’의 대가들이었다. 하나의 원형 콘텐츠를 여러 장르에 다양하게 활용하는 문화산업 전략을 이미 수백년 전부터 능숙하게 풀어낼 줄 알았다. 바로 문인화, 길상화, 산수화 등의 회화 콘텐츠를 여러 공예 장르의 작품들이 공유하는 방식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호림박물관 분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특별전 ‘조선의 나전-오색찬란’에서 조선 장인들의 뛰어난 콘텐츠 응용력을 엿보게 된다. 영롱한 빛을 내뿜는 조개, 소라 껍질 등을 검은 옻칠 목판에 붙이고 각종 함과 갑, 빗접, 베갯모 등을 만든 다기한 나전칠기 공예품들이 전시장을 채웠다.
상당수 작품들을 앞뒤, 위아래로 보는 위치를 바꿔가며 감상할 수 있다. 덕분에 문인화, 민화, 매죽·화조도 같은 당대 유행 그림들을 나전조각을 떠서 정교한 선을 만드는 방식으로 몸체에 재현한 회화적 나전기술의 진수가 드러난다. 당대 회화의 유행을 판박힌 듯 뒤따라간 푸른빛 청화백자와 거의 비슷한 유행을 탄다는 것이 흥미롭다.
18~20세기 나전공예를 망라한 출품작들은 19세기 작품들이 가장 많다. 청화백자처럼 19세기 공예취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나전칠기들도 과할 만큼 화려하고 현란한 장식문양이 늘어난다. 회화가 대중화하면서 자연스럽게 공예품에 대한 미감도 민화, 장식화, 궁중화 등의 이미지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양상으로 바뀐 것이다. 나전조각을 깨뜨려 단면에 아롱진 색채를 도두보이게 한 타찰법과 정교한 선을 잘게 끊은 조개껍질 선으로 묘사하는 끊음법 등 특유의 기법까지 주목하면 전시를 보는 흥취가 깊어진다. 나전칠기는 18세기 말 이후 시대 변화를 민감하게 따라가지만, 17세기까지는 임진왜란을 겪었는데도, 고려시대의 촘촘한 당초문 잔무늬 양식을 고수하는 등의 보수성도 갖고 있다. 전시에서는 이런 역사적 특징들을 작품들을 통해 실감할 수 있다.
호림미술관은 전시 때마다 내부 디자인이 달라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나전칠기의 전통 제작 공정을 본떠 이른바 ‘백골’이라 불리는 옻칠 입히지 않은 나무 뼈대를 조개와 전복 소라의 나전 곡선 모양으로 구부려 2층 전시장 공간에 형상화했다. 6월30일까지. (02)541-3523~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호림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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