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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낯선 동작으로 파헤친 일상의 이면

등록 2015-03-23 19:59

윤푸름의 <17cm> 리허설 장면으로, 우리 내면의 불편한 영역을 가차없이 들춰낸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윤푸름의 <17cm> 리허설 장면으로, 우리 내면의 불편한 영역을 가차없이 들춰낸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인간관계 다룬 윤푸름 ‘17㎝’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최소한의 감각적 거리 춤으로
새봄, 다시 춤이 말을 건다. 국립현대무용단의 2015년 첫 공연 ‘끝-레지던시: 안무가 초청프로젝트’다. 차세대 안무가의 선두주자 윤푸름과 임지애가 낯선 시선, 낯선 몸짓을 선보인다. 여성의 눈으로 소외를 탐구해온 윤푸름의 <17cm>가 우리 내면의 불편한 영역을 가차없이 들춰낸다면, 유럽과 일본 등에서 활동중인 임지애의 <어제 보자>는 언어관습과 분리된 몸짓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동 국립현대무용단 연습실을 찾았다.

여자 셋, 남자 둘. 다섯 춤꾼이 눈을 가린 채 계속 움직인다. 딩, 디링~ 음악이 울리면 입맞춤을 한다. 다시 움직이다 음악이 울리면 포옹을 한다. 한 명이 ‘포옹 남녀’를 떼놓고 그 중 한 명과 입맞춤을 한다. 쪽! 소리가 나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퉷! 뱉는다.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있다. 춤꾼들도 비스듬히 누워 그의 몸과 얼굴을 관찰한다. 누운 몸을 하나 둘씩 타고 넘는다.

윤푸름 안무의 <17cm>는 인간의 다양한 관계를 낯선 시선으로 뜯어본다. 상대방을 인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감각적 거리를 17cm라고 설정한다. 너무 가까우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시선을 옮기면서, 관계와 공간도 수시로 바뀐다. 머무름과 옮김, 밀침과 당김, 욕망과 배제를 통해 인간관계의 적나라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보는 이들은 때론 관음증적인 자신에 화들짝 놀라고, 때론 일상 깊숙이 숨겨진 이면을 불편하게 곱씹어보게 된다.

윤푸름이 <17cm>로 ‘자신과의 불편한 대면’을 그려낸다면, 임지애의 <어제 보자>는 ‘언어관습에서 떼어낸 몸의 움직임’을 현미경적으로 탐구한다.

<어제 보자>에서 쓰는 언어는 딱딱한 문어체다. 1950년대 영화 <자유부인>에서 뽑아왔다. 영화에서 후시녹음된 말과 배우의 동작은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촌스럽다 못해 우스꽝스럽다. 우리는 보통 말을 할 때 그에 걸맞은 제스처를 한다. 그러면 언어와 동작은 하나로 통합된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달한다. 그런데 이 춤판에선 이상하다. 말을 하는 것과 관계없이 동작을 한다. 언어에서 동작을 뗀 것이다. 세 춤꾼은 똑바로 걷다가 옆으로 픽 쓰러지고, 하늘을 보다가 휘청 한다. 언어에서 동작을 뗀 다음, 다시 동작 속에 있는 고정된 신체 언어를 허무는 것이다.

언어를 깨고 다시 신체 언어까지 깬 춤 동작은 통념으로 자리잡은 권력구조와 관습을 깬다. 언어와 동작의 분리는 곧 말의 상투성(클리쉐)을 벗겨내는 일이기도 하다. 상투성을 이겨낸 동작은 그 자체로 새로움의 창조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지난해 ‘역사와 기억’이라는 주제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점검했다. 2015년 시즌 주제는 ‘밑 끝 바깥’이다. 지난해 주제의 연속선에서 ‘지금 여기’의 범위를 밑(under)과 끝(between)과 바깥(beyond)으로 넓혔다. 이번 작품 ‘끝-레지던시: 안무가 초청 프로젝트’는 끝과 시작의 사이를 포착한다. 춤의 창작, 언어와 몸의 관계 등 개념의 경계를 허물어 공간과 관계의 의미를 재배치하겠다는 것이다. 27~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02)3471-1421.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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