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국가대표 유도 선수들이 연극 <유도 소년>을 관람한 뒤 출연 배우들을 만나 장난스럽게 대결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유도 선수 김원진, 조구함, 왕기춘, 안창림과 배우 신창주, 홍우진, 임철수. 스토리피 제공
연극 ‘유도소년’, 왕기춘·조구함 등 관람
지난 27일 연극 <유도 소년> 시작 30분 전. 리허설에 한창이던 ‘유도 소년’들이 오늘따라 더 긴장한다. 2월7일부터 두 달 가까이 반복해온 공연인데, 새삼스럽게 왜 이러나. “이건 유도 선수가 송강호 앞에서 연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요!” 유도부 주장 박경찬을 연기하는 배우 홍우진의 넋두리에 함께 있던 임철수(요셉), 신창주(태구)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유가 있었다. 유도 선수들이 유도 소년을 만나러 왔다. 남자 국가대표 왕기춘(81㎏급), 조구함(100㎏), 김원진(60㎏), 안창림(73㎏)이 27일 저녁 8시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연극 <유도 소년>을 관람했다. 왕기춘과 조구함은 2014년 초연 때 보고 두 번째다. 왕기춘은 “유도에 대한 연극이라고 해서 지난해 엄마와 누나와 함께 봤었는데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 연극으로 관객들이 조금이나마 유도를 알게 되어 유도인으로서 뿌듯하다”고 했다.
전국체전 배경 선수 성장이야기
승부세계 고뇌·좌절 현실감 생생
왕기춘 “유도인으로서 뿌듯해”
조구함 “두 달 연습해 이만큼…놀랍다”
온몸 던지는 배우들 연기에 박수 <유도 소년>은 1997년 전국체전을 배경으로 전북체고 2학년 유도 선수 박경찬의 성장 이야기를 담았다. 유도 유망주였던 경찬은 고교 진학 뒤 경기력이 떨어지며 대학 진학도 어려울 지경에 이른다. 아픈 게 싫어서 질 것 같으면 이내 경기를 포기했다. 연극은 경찬이 슬럼프를 이겨내고 마음을 다잡는 과정에 주목한다. 웃음과 감동 그리고 연극에서는 드물게 스포츠를 결합한 역동성 등이 화제를 모으며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곧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그러나 선수들은 마냥 웃으면서 볼 수만은 없나 보다. “유도를 하다가 왔는데, 또 유도를 봐야 한다”며 우스갯소리를 하던 선수들은 연극이 시작되자 사뭇 진지해졌다. 올림픽 금메달만 바라보며 땀 흘리는, 무대 위의 또다른 자신과 마주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왕기춘은 “시합장에 들어서면 한 명은 승자, 한 명은 패자가 된다. 누군가는 반드시 울어야 한다. 연극으로만 봐도 불쌍한 승부의 세계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했다. 특히 남들은 알기 힘든 선수의 고뇌가 드러나는 대목에선 눈에 힘이 들어갔다. <유도 소년>은 실제 유도 선수였던 박경찬 작가가 자신을 주인공 삼아 썼다. 그래서 남모를 속앓이 등이 제법 사실적으로 담겼다. 안창림은 “대학 진학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 부분이 마음이 아팠다. 나도 고2 때까지 유도를 잘하지 못해 비슷한 고민을 했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고 했다. 왕기춘은 “시합에서 지고 괴로워하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며 잘 털어놓지 않았던 속내도 끄집어냈다. “(재작년 11월에) 체급을 올리고 운동이 안될 때가 많았어요. 마음은 이렇게 하면 상대가 넘어갈 것 같은데 안되니까. 이것밖에 안되나, 혼자 운 적이 많아요.” 연극 내용처럼 이들도 동료들의 존재가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매트만 달랑 깔린 <유도 소년> 공연장은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가까워 유도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누르기, 업어치기, 굳히기 등의 기술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실제 경기를 보는 듯한 생동감에 관객들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선수들은 ‘보기만 해도 지겹다’는 듯 시합 장면이 나올 때면 발을 쳐다보는 등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그러나 몸을 던지는 배우들의 열정 연기에는 박수를 보냈다. 배우들은 두 달간 매일 유도 훈련을 했다. 조구함은 “두 달 연습해서 이 정도로 연마한 게 놀랍다”고 했다. “그러나 튜브트레이닝을 할 때는 자세를 좀 더 절도 있게 잡아야겠다”는 국가대표다운 조언으로 ‘소년’들을 긴장시켰다. 연극은 소소한 재미를 가미했다. 삐삐에 ‘1004’(천사)를 친다거나, 유피의 ‘뿌요뿌요’ 등 90년대 노래들이 울려 퍼지며 아날로그 감성도 자극한다. 선수들은 경찬이 경기를 앞둔 후배들한테 승리의 징표로 여자 팬티를 선물하는 장면에서는 크게 웃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지는 않았단다. 왕기춘은 “경기 전에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 등 징크스는 있다”고 했다. 혈기 왕성한 남자들답게 힘든 훈련 속에서도 연애가 꽃피는 장면에서는 경찬에 빙의된 듯 눈을 떼지 않았다. 연극의 말미, 경찬은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전국체전 4강전에서 상대 선수의 조르기 기술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연극은 경찬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결과보다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하지만 현실은 연극보다 조금 더 냉혹한 것 같다. 선수들은 “실제 승부에서는 지면 끝”이라며, 6월에 있을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 대비해 현실의 매트로 돌아갔다. 여담 하나. 박경찬 작가가 선수이던 시절 이원희 현 여자 국가대표 코치는 범접할 수 없는 일인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연극에는 이원희 코치의 대역 배우가 박경찬과 시합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원희 코치는 연극이 끝난 뒤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대역이 아닌 내가 직접 나가 겨뤄보겠다”고 했다. 소년들은 손사래를 쳤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승부세계 고뇌·좌절 현실감 생생
왕기춘 “유도인으로서 뿌듯해”
조구함 “두 달 연습해 이만큼…놀랍다”
온몸 던지는 배우들 연기에 박수 <유도 소년>은 1997년 전국체전을 배경으로 전북체고 2학년 유도 선수 박경찬의 성장 이야기를 담았다. 유도 유망주였던 경찬은 고교 진학 뒤 경기력이 떨어지며 대학 진학도 어려울 지경에 이른다. 아픈 게 싫어서 질 것 같으면 이내 경기를 포기했다. 연극은 경찬이 슬럼프를 이겨내고 마음을 다잡는 과정에 주목한다. 웃음과 감동 그리고 연극에서는 드물게 스포츠를 결합한 역동성 등이 화제를 모으며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곧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그러나 선수들은 마냥 웃으면서 볼 수만은 없나 보다. “유도를 하다가 왔는데, 또 유도를 봐야 한다”며 우스갯소리를 하던 선수들은 연극이 시작되자 사뭇 진지해졌다. 올림픽 금메달만 바라보며 땀 흘리는, 무대 위의 또다른 자신과 마주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왕기춘은 “시합장에 들어서면 한 명은 승자, 한 명은 패자가 된다. 누군가는 반드시 울어야 한다. 연극으로만 봐도 불쌍한 승부의 세계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했다. 특히 남들은 알기 힘든 선수의 고뇌가 드러나는 대목에선 눈에 힘이 들어갔다. <유도 소년>은 실제 유도 선수였던 박경찬 작가가 자신을 주인공 삼아 썼다. 그래서 남모를 속앓이 등이 제법 사실적으로 담겼다. 안창림은 “대학 진학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 부분이 마음이 아팠다. 나도 고2 때까지 유도를 잘하지 못해 비슷한 고민을 했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고 했다. 왕기춘은 “시합에서 지고 괴로워하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며 잘 털어놓지 않았던 속내도 끄집어냈다. “(재작년 11월에) 체급을 올리고 운동이 안될 때가 많았어요. 마음은 이렇게 하면 상대가 넘어갈 것 같은데 안되니까. 이것밖에 안되나, 혼자 운 적이 많아요.” 연극 내용처럼 이들도 동료들의 존재가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매트만 달랑 깔린 <유도 소년> 공연장은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가까워 유도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누르기, 업어치기, 굳히기 등의 기술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실제 경기를 보는 듯한 생동감에 관객들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선수들은 ‘보기만 해도 지겹다’는 듯 시합 장면이 나올 때면 발을 쳐다보는 등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그러나 몸을 던지는 배우들의 열정 연기에는 박수를 보냈다. 배우들은 두 달간 매일 유도 훈련을 했다. 조구함은 “두 달 연습해서 이 정도로 연마한 게 놀랍다”고 했다. “그러나 튜브트레이닝을 할 때는 자세를 좀 더 절도 있게 잡아야겠다”는 국가대표다운 조언으로 ‘소년’들을 긴장시켰다. 연극은 소소한 재미를 가미했다. 삐삐에 ‘1004’(천사)를 친다거나, 유피의 ‘뿌요뿌요’ 등 90년대 노래들이 울려 퍼지며 아날로그 감성도 자극한다. 선수들은 경찬이 경기를 앞둔 후배들한테 승리의 징표로 여자 팬티를 선물하는 장면에서는 크게 웃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지는 않았단다. 왕기춘은 “경기 전에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 등 징크스는 있다”고 했다. 혈기 왕성한 남자들답게 힘든 훈련 속에서도 연애가 꽃피는 장면에서는 경찬에 빙의된 듯 눈을 떼지 않았다. 연극의 말미, 경찬은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전국체전 4강전에서 상대 선수의 조르기 기술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연극은 경찬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결과보다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하지만 현실은 연극보다 조금 더 냉혹한 것 같다. 선수들은 “실제 승부에서는 지면 끝”이라며, 6월에 있을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 대비해 현실의 매트로 돌아갔다. 여담 하나. 박경찬 작가가 선수이던 시절 이원희 현 여자 국가대표 코치는 범접할 수 없는 일인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연극에는 이원희 코치의 대역 배우가 박경찬과 시합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원희 코치는 연극이 끝난 뒤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대역이 아닌 내가 직접 나가 겨뤄보겠다”고 했다. 소년들은 손사래를 쳤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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