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영감을 얻은 현대춤 <비극>이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은 알몸의 군상을 통해 성별, 연령, 계급의 구별이 사라진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린다.
성남문화재단 제공
한국 초연 현대무용 ‘비극’
안무가 올리비에 뒤부아
니체 ‘비극의 탄생’서 영감
알몸의 남녀 춤꾼 18명
90분간 뛰며 고통스런 표현
안무가 올리비에 뒤부아
니체 ‘비극의 탄생’서 영감
알몸의 남녀 춤꾼 18명
90분간 뛰며 고통스런 표현
지난해 5월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기원> 앞에서 룩셈부르크의 행위예술가 데보라 로베르티스가 그 그림을 재현했기 때문이다. 그 작품은 여성의 음부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해 발표 당시부터 논란을 일으켰다. 미술관 직원은 예술가에게 중단을 요청하다 말을 듣지않자, 그의 중요부분을 가렸다. 그의 노출은 외설인가, 예술인가. 대중 앞에서 드러낸 노출증인가, 대작가에 대한 오마주인가. 이 동영상은 에스엔에스를 타고 전세계로 퍼졌다.
전라(全裸)의 ‘19금 무용’이 무대에 오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알몸이다. 90분 동안 남녀 18명은 엉키고 질주하고 지쳐 헐떡인다. 전라는 호기심, 관음증, 외설과 혐오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현대무용이 거는 외나무다리의 정면승부이기도 하다. 찬사와 비난 양극단의 평가만 있고 그 중간은 없다. 프랑스 안무가 올리비에 뒤부아가 그 외나무다리에서 관객과 대결한다. 22~51살의 남녀 춤꾼들이 펼치는 <비극>(Tragedie)이다. 2012년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초청작으로 4월 한국 무대에 처음으로 오른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속된 말로 ‘벗는 춤’은 장사가 된다. ‘벗는다’에 초점을 맞추면 장삿속과 외설, 노출증과 관음증이다. 반면 ‘왜 벗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예술적인 행위로 격상된다. 경계는 애매하다. 작품 속에서 ‘벗은 몸’이 왜 필요한지 맥락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비로소 금기를 깨는 예술적 행위로 설득력을 얻는다. <비극>의 2012년 공연 동영상을 미리 살펴봤다.
막이 오르면, 여성 춤꾼들이 천천히 걸어나온다. 앞으로 걸어나오다 방향을 꺾어 되돌아간다. 여성이 무대 안으로 사라지는 순간 남성들이 걸어나온다. 뛴다. 두 팔을 허공에 흔든다. 절규한다. 바닥에 엎드려 헤드뱅잉을 한다. 쓰러진다. 구른다. 몸이 몸 위로 포개진다. 파르르 떤다. 생선처럼 파닥인다.
죽도록 춰야 하는 고통스러운 춤이다. 탈진상태에 이르면 이들의 성별, 연령, 계급의 구별이 희미해진다. 성과 계급이라는 ‘다름’이 사라지면, 인간 본연의 육체라는 ‘같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18명의 춤꾼은 각자의 개성을 지니면서도 인간 보편성을 표현한다. 춤의 고통 뒤에는 이렇게 춤의 인간해방이 온다. 안무가 뒤부아는 “내 작품은 춤꾼들이 버거워할 정도로 극단적인 육체적 능력을 요구한다. 때문에 모두가 작품에 온 힘을 다하도록, 춤꾼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알몸은 알몸이되, 꼭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외설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미간을 좁히며, 눈에 힘을 주며, 침을 꼴깍 삼킬 정도가 아니라는 얘기다. 춤꾼의 몸이 ‘우월하게’ 아름다웠다면 선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부분을 미리 차단했다.
안무가 뒤부아의 춤 세계는 독특하다. <목신들의 오후>, <지상의 모든 금을 위하여> 등 작품을 통해 스트립쇼, 봉 춤(폴 댄스), 자위를 연상시키는 행위로 공연예술을 지배해온 정제된 성적묘사에 조소를 날렸다. 외모도 독특하다. 170㎝가 되지 않는 키, 몸무게는 80㎏이다. 춤꾼보다 레슬링 선수에 가까운 모습이다. 1972년생인 뒤부아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뒤늦게 춤을 배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1년치 생활비와 레슨비를 쥐여주며 말했다. “내가 예전부터 얘기했잖니, 너는 춤을 출 수 있는 몸매가 아니라고.” 그의 어머니는 틀렸다. 하지만 기분 좋았을 것이다.
4월 10, 11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극장. (031)783-8000. 1544-8117.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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