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100년 훑은 연극 7편…서울연극제 4일 개막
일곱 편의 연극이 우리의 지난 100년사를 일곱 빛깔 프리즘으로 투사한다. 오는 4일 개막하는 제36회 서울연극제는 연대기별로 근·현대사를 살핀다. 공식참가작 7편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격동의 1980년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 역사를 한 꿰미로 엮는다. 생생한 역사와 함께 세세한 삶의 무늬들도 무대 위에 돋을새김 된다.
1920년대 민중의 고통과 저항
극단 76단과 극단 죽죽의 <물의 노래>(5월2~9일 아르코대극장)는 1923년 일본 간토대지진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한다. 이런 위기 속에서 우동집에 숨어든 조선인과 일본인 가족의 유대를 보여준다. 극단 고래의 <불량청년>(23~5월3일 대학로자유극장)도 같은 시대를 다룬다. 제 밥벌이에만 관심 있는 28살 김상복은 김상옥 의사의 동상 역할로 ‘알바’를 한다. 그러다 집회에서 물대포를 맞고 갑자기 1921년에 떨어진 그는 상해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만난다. 두 작품은 1920년대 조선, 일본, 중국을 넘나들며 식민지 민중의 고통과 저항을 담았다.
1940년대 친일 지식인의 초상
극단 골목길의 <만주전선>(4~15일 대학로자유극장)은 이번 서울연극제 개막작이다. 1940년대 만주국 수도 신경(창춘)이 배경이다. 꿈을 안고 만주로 떠난 조선 유학생들의 사랑과 우정, 역사의식을 통해 오늘을 사는 청년들의 모습을 짚어본다. 그들의 꿈은 오직 만주국 고관이 돼 인본인처럼 사는 것이었다. 독립운동가를 비적으로 부르는 그들을 통해 민족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그들의 이율배반적인 허위의식과 속물근성, 다시 우리 시대를 겨냥하는 풍자와 조롱은 관객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1950년대 전쟁과 공동체의 위기
극단 바람풀의 <씨름>(4~12일 동양예술극장)은 한국전쟁을 통해 전쟁터 같은 우리 사회를 되짚어본다. 전쟁에 끌려갔던 건만과 웅치는 다행이 살아남아 동굴에 숨어든다. 부상에 신음하며 배고픔을 참아가던 그들은 생존의 극한 상황에서 엇갈린 선택을 한다. 연극은 질곡의 역사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고 얘기한다. 또 전통 씨름과 정서적으로 한국인과 닮은 소를 무대에 등장시켜 공동체의 의미를 묻는다.
1980년대 6월항쟁 세대의 상흔
극단 광장의 <6.29가 보낸 예고부고장>(23~29일 아르코대극장)은 6월 항쟁 세대의 얘기다. 한국대학교 법학과 86학번 우진, 석호, 종기, 숙희는 동기생 강영웅의 예고부고장을 받고 한자리에 모인다. 격동의 80년대, 젊은이들은 시국의 불안과 사회의 불협화음 속에서 저마다 삶의 목표와 이념 등 모든 면에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대를 산 남자한테서 모든 것을 앗아버리고 지옥 같은 삶을 살게 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2015년 현재 한국의 자화상
다른 작품들이 지난 연대기들을 톺았다면, 2015년 오늘 한국의 자화상들도 무대에 오른다.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청춘, 간다>(5월7~17일 아르코소극장)는 ‘슬픈 30대’를 그린다.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받으며 30대 중반을 맞은 주인공은 패배자임을 받아들이며, 청춘을 떠나보낸다. 극단 필통의 <돌아온다!>(16~26일 동양예술극장)는 경기 외곽의 식당을 배경으로 그리움을 가슴 속에 쟁여둔 사람들을 그린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4일 개막하는 서울연극제 개막작인 <만주전선>은 독립운동가를 비적이라 부르는 조선 유학생들을 통해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까발린다. 서울연극협회 제공
<6.29가 보낸 예고부고장>은 6월 항쟁 세대의 꿈과 좌절을 그렸다. 서울연극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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