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문모텔 Ⅱ 전시장에 나온 사진가 이주영씨의 작업. 전시장으로 리모델링되기 전 옛 모텔의 미세한 흔적들을 포착했다.
낡은 모텔서 미술관 변신한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 Ⅱ
1년간의 리모델링 기록사진
애잔하고도 기이한 모습 포착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 Ⅱ
1년간의 리모델링 기록사진
애잔하고도 기이한 모습 포착
본다. 오래 본다. 낯설게, 샅샅이 본다. 하여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본다.
사진가 이주영(44)씨는 이런 철칙아래 지난 1년여간 낡은 옛 모텔 건축물의 리모델링 과정을 천천히, 집요하게 화상에 담았다. 촬영한 이미지를 모으고 보니 애잔하면서도 기이하고 환상적인 흔적의 역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메라가 줄곧 향했던 곳은 지은지 40년 넘은 제주시 산지천 옆의 옛 대진모텔 건물 내부. 5층 공간 곳곳을 누비며 찍은 사진 속에는 뜯겨져 나간 창문, 벗겨진 채 사라지기 직전인 벽지조각, 콘크리트 벽면의 닳거나 패이고 구멍뚫린 단면들이 속속 들어와있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지나치는 버림받은 공간들을 눈품을 들여 렌즈 안으로 끌어들이며 존재를 증명해주는 작업이었다. “내가 만약 유적을 발굴하는 고고학자라면 이 리모델링 과정을 어떻게 기록할까란 공상을 하며 건물 구석구석을 탐사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 독특한 리모델링 기록사진들은 대진모텔을 뜯어고쳐 1일 새로 문을 연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 Ⅱ 5층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개관전시 ‘공명하는 삼각형’(9월6일까지)의 출품작으로 나온 이씨의 사진연작들은 ‘층위의 균형잡기’란 이름이 붙었다. 과거 사용자가 이리 저리 칠한 색층의 잔해들이 뒤엉킨 벽, 공사장 가림막의 확대 이미지 사진 등이 추상회화처럼 다가오면서도 건물의 과거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킨다. 특히 ‘철거’란 과거 펜글씨가 적힌 실제 간유리 창문이 공간에 매달려 전시장 창문 바깥의 제주시내 풍경과 어울리는 구도는 이 창문의 지난 내력에 대한 여러 공상을 자아내게 만든다. 섬 구석의 잊혀진 한 장소에도 다양한 인간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공간의 물질성, 파편성을 수집해 보여주는 작업들이다. 삼각형의 독특한 평면을 지닌 전시장에는 국악록밴드 잠비나이의 사운드아트,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 대한 영상을 비닐막이 달린 철제 구조물에 투사해 보여주는 다큐감독 박경근씨의 영상설치, 리모델링된 전시장의 재탄생 과정을 빛의 전환으로 상상한 정소영씨의 금속유리판 설치작업들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9월6일까지.
동문모텔 Ⅱ 개관은 미술계 큰손 컬렉터인 김창일 아라리오 그룹 회장이 야심적으로 추진해온 제주시내 아트타운 프로젝트를 마무리짓는 사업이다. 앞서 지난해 ‘아라리오 뮤지엄 제주’란 큰 이름 아래 ‘동문모텔 Ⅰ’, ‘탑동시네마’, ‘탑동바이크샵’ 등 3개의 전시장을 개관한 바 있다. 현재 탑동시네마에서는 한국 추상회화의 대가 윤명로 작가 전을, 탑동바이크샵에서는 사진조각을 하는 권오상 작가의 개인전도 열리고 있다.
제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새로 개관한 동문모텔 Ⅱ의 외부 모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