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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70대 배우 이호재, 무대에선 20년 젊어진다

등록 2015-04-07 19:46

우리 나이로 75살인 배우 이호재가 연극 <소년B가 사는 집>에서 55살 아버지 역을 맡았다. 그는 젊은 제작·출연진과 함께 연습하면서 “다시 열정이 타오른다”고 했다.  국립극단 제공
우리 나이로 75살인 배우 이호재가 연극 <소년B가 사는 집>에서 55살 아버지 역을 맡았다. 그는 젊은 제작·출연진과 함께 연습하면서 “다시 열정이 타오른다”고 했다. 국립극단 제공
연극 ‘소년B가 사는 집’에서
살인자 아들 둔 55살 아버지 역
‘젊은 생각’ 덕에 자연스러워
아버지의 머리는 눈을 덮어쓴 듯 하얗다. 아버지는 “눈이 그쳤어. 집 앞을 쓸어 놔야지”라고 했다. 아들은 14살 때 살인을 했다. 그날부터 ‘살인자 가족’이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겼고, 악마의 집이 됐다. 자책에 가슴을 치던 아들은 마침내 용기를 내어 피해자 가족을 찾아간다.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다. 아버지가 “마당을 쓸어야지”라고 표현하는 순간, 이 집이 이제 사람이 들고나는 집이 됐으면…. 폭설처럼 쏟아졌던 ‘살인자 가족’의 고통도 빗자루에 쓸려 사라졌으면….

우리 나이로 75살인 이호재가 55살 아버지 역을 맡았다. 이보람 작 김수희 연출의 연극 <소년B가 사는 집>에서다. 지난 3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을 찾았다. 오후 늦게 연습이 끝났다. 이호재를 비롯한 출연진들과 중국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을 한 잔 든 뒤 그는 “집 앞을 쓸어놓는 것은 기다림”이라고 설명했다.

“소년B가 사는 집의 극중 가족에겐 살인을 저지른 아이가 있지만, 어떤 가족이든 어려움이 있고 회복하기 힘든 상처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어려움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꼭 좋아진다고 볼 수는 없어요. 하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회복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그냥 아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마당을 쓰는 것이지요. 그렇게 밖에는 할 수 없어요.”

이호재는 올해로 연기인생 52년째다. 휘문고 다닐 때는 아이스하키 선수였다. 1962년 서울연극아카데미(서울예대)에 입학했다. 가을 학기에도 신입생을 받아준다고 해서 들어갔다. 그곳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전무송, 신구와 만났다. 입학 이듬해인 1963년 명동국립극장에서 직업 연극무대에 첫 발을 디뎠다. 친구인 음향전문가 김벌레가 연출한 존 스타인벡 원작의 <생쥐와 인간>이었다. 이호재는 낮은 목소리에도 위엄이 실렸다. 그의 연기는 자연스럽고 유연하다는 평가다.

이호재의 물리적 나이는 70대지만, 50대 역할이 꾸준히 들어온다. 지난해 데이비드 헤어 원작의 <스카이라잇>에서 성공한 50대 프랜차이즈 사업가 역을 맡았다. 이어 이번 <소년B가 사는 집>에서도 50대 아버지를 연기한다. 그가 젊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솔직하게, 일단은 ‘화장발’이다. 무대분장을 하면 70대도 50대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생각이 젊다’는 점이다. 비록 겉으로 내세우지는 않지만, 후배 연극인 권해효, 오지혜가 고민하는 지점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그런 힘은 1970년대부터 다져왔다. “동아투위, 조선투위 핵심은 연극 담당 기자들이었어요. 그 친구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들을 응원했지요.” 이번 작품에서 젊은 제작·출연진과 함께하면서 그는 다시 ‘무대의 열정’이 불타올랐다.

“잃어버렸던 열정적인 모습을 다시 볼 수가 있어 좋았어요.” 빈 술병이 늘어나자 말도 늘었다. 말이 길어졌지만 말끝은 짧아졌다. 높임말과 낮춤말이 뒤섞였다. “난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편안하게 하잖아. 그런데 젊은 사람들 보면 내가 잃어버렸던 열정이 막 보이는 거야. 그래서 난 참 좋아.”

그는 대학로 가까운 명륜동에 산다. 술친구들과 만나기도 편리하고, 집에 갈 때 택시비도 들지 않아 좋단다. 경북 영주 부석사 바로 밑에 비싸지 않은 별장을 마련해 뒀다. 술김에 초대를 받았다. “어, 한번 놀러 와!”

<소년B가 사는 집>은 14~26일 국립극장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에 오른다. 1688-5966.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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