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작가가 온양민속박물관과 함께 기획한 ‘옆-WITH-間’ 전의 전시장 모습. 주민이 기증한 가구에 거울을 붙여 일렬로 늘어놓았다.
수십년 묵은 시골집 세간들이 점호받듯 줄맞춰 늘어섰다. 밥상, 책상 등을 포개어 쌓아올린 9층탑이 맨 앞이다. 뒤이어 뒷면에 거울 붙인 나전칠기 자개장, 화장대, 장롱의 행렬이 줄줄이 딸려나온다. 맨 뒤는 방문짝, 창문짝들. 문짝들을 병풍처럼 동그랗게 모아붙이고 조명까지 곁들이니 인테리어 작품처럼 보인다.
충남 아산 온양민속박물관이 잡동사니 작가 최정화(54)씨의 놀이세상이 됐다. 경내 구정아트센터의 ‘옆의 옆’ 공간에 차린 주민 이광수(70)씨의 옛 세간 기증품 전시는 최 작가의 손길을 받아 현대미술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60여년 살아온 아산시 신창면 한옥을 팔면서 기증한 세간살이들인데, ‘미술재생전문가’ 최씨가 이리저리 주무르고 붙였더니 과거, 현재의 시간이 새삼 와닿는 공간설치물이 됐다. 옛 세간들의 문화재 전시이면서 작가의 신작전이기도 한 셈이다. 특히 등짝에 거울판 붙이고 일렬로 서있는 장롱과 경대의 행렬을 지켜보며 왔다갔다하는 체험은 묘한 감흥을 준다. 관객들이 등 보이고 지나가는 모습들이 가구 거울판 위로 과거의 이미지가 되어 휙휙 흘러가며 사라진다. 들머리의 상을 쌓은 9층탑 각 층에는 이씨 집안에서 썼던 접시, 부엌 그릇, 유리컵, 숟가락 등이 가득 놓여있어 수십년 삶의 흔적을 낯설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최 작가가 ‘옆’이라는 이름 아래 온양박물관과 손잡고 벌이는 독특한 공공예술작업 프로젝트다. “앞으로만 달려가는 지금 우리 일상의 옆을 보면서 생활과 예술이 하나되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되는 세상을 꿈꿔보자”고 말하는 작가는 박물관 경내 곳곳에 ‘최정화표 생활예술’을 펼쳐놓았다. 특히 ‘옆과 옆’이란 공간에 역시 옛 세간들처럼 줄줄이 늘어선 ‘내일의 꽃’ 연작 14점은 작가가 최근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신작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합성수지와 안료가 범벅이 되어 푸석푸석하고 꺼림칙한 느낌부터 주는 이 인공화초들은 ‘미친 꽃’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세상사 모순 속에 뒤얽혀사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한다. ‘항상 옆’이라고 이름붙인 중앙전시장은 플라스틱 세상이다. 박물관 근처 지역주민들이 모아준 1만여점의 각종 플라스틱 생활용품과 장난감 등을 방사형으로 펼치며 만든 거대한 설치작품이 관객을 맞고있다.
전시기획자, 디자이너로도 성가가 높은 만능작가의 재기를 한껏 실감할 수 있는 박물관 난장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용품들을 잔뜩 쌓는 작가 특유의 설치작업은 최근 수년간 숱하게 되풀이해온 스타일이라 식상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온양/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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