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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나에게 연극이란…농사일만큼 중요한 무엇!

등록 2015-04-15 19:44수정 2015-04-15 21:23

국립극단 배우 출신인 이상직씨가 이끄는 구례 군민극단 ‘마을’이 연극 <우리 읍내> 공연을 앞두고 13일 밤 막바지 연습을 하고 있다. 이 극단의 다섯번째 정기공연 작품으로 오는 20~26일 구례문화예술회관 소극장 무대에 오를 <우리 읍내>는 손턴 와일더의 희곡 <아워 타운>을 구례읍의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각색하고 맛깔난 전라도 사투리로 풀어냈다.
국립극단 배우 출신인 이상직씨가 이끄는 구례 군민극단 ‘마을’이 연극 <우리 읍내> 공연을 앞두고 13일 밤 막바지 연습을 하고 있다. 이 극단의 다섯번째 정기공연 작품으로 오는 20~26일 구례문화예술회관 소극장 무대에 오를 <우리 읍내>는 손턴 와일더의 희곡 <아워 타운>을 구례읍의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각색하고 맛깔난 전라도 사투리로 풀어냈다.
구례군민극단 ‘마을’ 다섯번째 정기공연
벚꽃이 실비처럼 흩날리는 오후 무렵 어느 지리산 등성이. 앞으로는 서시천이 흐르고 뒤로는 산성봉과 천왕봉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읍내 명당자리에 봉산 공동묘지가 자리하고 있다. 햇볕 바른 봉분들 사이로 하얀 소복을 입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든다.

“어머니, 돌아 갈 수 있죠? 저 세상으로요…. 돌아가서 일생을 다시 살 수도…있죠?”(미자)

“잊어 불어라.”(김주사 부인)

아이를 낳다 죽은 미자가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자 시어머니인 김주사 부인이 점잖게 나무란다.

이때, 객석에서 “잠깐만요.” 연극 <우리 읍내>의 3막 ‘공동묘지’ 장면을 지켜보던 이상직(49) 연출가가 무대 앞쪽으로 걸어나간다. “미자야, 그게 아니잖아. 정신을 어디에 팔고 있어. 열정을 가지고 제대로 하란 말이야.”

미자가 고개를 푹 숙이자 다른 배우들도 어쩔줄 몰라 시선을 돌린다. 이상직 연출가는 “잠시 쉬었다가 하자”며 극장 밖으로 휙 나가버린다.

“우리가 못하니까 애먼 시은이만 대표로 야단 맞네.” 미자의 친정아버지이자 대장간 이샌 역의 배우 고상석(48·구례읍 봉동리)씨가 담배를 꺼내문다. 시은(16·한울고2)이는 이상직 연출가의 딸이다. “공연이 코앞이니까 상직이형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 같소.” 읍사무소 호적담당 김주사 역의 배우 김지호(47·토지면 문수리)씨가 슬그머니 한마디 거든다.

이상직씨에게 다가가자 “전문배우가 아니라서 생업을 하면서 연극을 하려니까 육체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힘들어 한다”면서 “쉬운 일이 아닌데 그걸 극복하고 참여하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슬며시 귀띔한다.

다시 리허설이 한차례 더 이어지고 저녁 7시부터 시작한 연습은 밤 10시를 훌쩍 넘어서 끝났다.

구례 군민극단 ‘마을’(단장 이상직)이 오는 20일부터 26일까지 전남 구례군 구례문화예술회관 소극장 무대에 연극 <우리 읍내>를 올린다. 국립극단 배우 출신으로 2000년 백상예술대상 연극 대상, 2004년 히서연극상 ‘올해의 연기상’을 수상했던 이상직씨가 2010년 ‘농사 짓는 연극인’을 꿈꾸며 낯선 구례에 내려와 만든 국내 최초의 군민극단이다. 문화에 목말라 있던 구례의 농부와 주부, 귀농·귀촌인들 25명 정도가 배우로, 지역의 화가, 사진가, 밴드 뮤지션 등이 스태프로 참여해 출발했다. 2012년 2월 창단 기념으로 올린 연극 <인생콘서트 39도 5분> 공연은 이틀 동안 섬진아트홀의 320석 객석뿐 아니라 홀 내부 통로까지 가득 찰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결국 5월에 두번째 정기공연을 해야 했다.

이상직씨는 “연극은 기본적으로 마을에서 이뤄졌던 소통의 행위”라고 말한다.

귀농배우 이상직씨 5년전 꾸려
국내 첫 군민극단…농부가 배우로
구례 일상사 담은 ‘우리 읍내’
저녁시간 활용해 공연연습 한창
“힘들지만, 내 존재감 채워줘”

“예전에 시골에서도 장터연극이라든지 아마추어 연극 같은 것이 있었어요. 함께 일하고 함께 농사 짓고 하면서 그 마을 안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잔치들, 그 안에 예술과 놀이가 살아있었는데 지금은 다 사라졌습니다.” 그는 “연극이 시작된 근본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연극을 찾아보자는 다분히 이상적인 생각으로 마을 극단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다섯번째 정기공연으로 미국 극작가 손톤 와일더(1897~1975)의 퓰리처상 수상작 <아워타운>을 선택해 구례 사람들의 삶과 정서, 언어에 맞게 <우리 읍내>로 각색했다. 구례읍의 어느 마을에서 태어나고 결혼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사를 잔잔하게 보여준다,

구례 군민극단 ‘마을’의 연출가 이상직씨와 배우들이 연습을 마친 뒤 내용을 되돌아보며 개선점 등을 얘기하고 있다.
구례 군민극단 ‘마을’의 연출가 이상직씨와 배우들이 연습을 마친 뒤 내용을 되돌아보며 개선점 등을 얘기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는 극단 배우 15명과 예비단원 4명 등 19명이 무대에 선다. 직업도 농부, 건축업, 가정주부, 학생 등 다양하다. 처음에 극단은 구례군민들만 참가했으나 소문을 듣고 순천, 곡성 등에서 찾아온 남녀 배우들로 다채롭다. 또 이상직 연출가가 순천의 대안학교 ‘사랑 어린 배움터’에서 연극을 가르친 제자 3명과 학부모 2명도 합류했다.

영자 역의 정두리(15·곡성군 죽곡면 삼태리)양은 “연극 배우고 싶다”고 혼자서 찾아왔다. 그는 “올해 처음 무대에 서는데 연습이 힘들지만 다른 사람을 체험하는 게 재미있다”며 “성격이 소심한 편인데 영자 역할을 연습하면서 많이 밝아진 것 같다”고 수줍게 웃는다.

감을 재배하며 논농사를 짓는 김은희(48·구례읍 병방리)씨는 단원 모집 포스터를 본 딸의 권유로 2011년 창단 멤버가 되었다. 그는 지난 5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연극을 병행하려다 보니 “겨울이 가는지 봄이 오는지 모르겠고 힘들어서” 올해는 쉬려고 했다. 그러다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뒤늦게 연습에 뛰어들었다. 그는 지난해 3월에 했던 정기공연 <겨울 해바라기>를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극에서 여관집 여자 주인 역할을 했는데, 공연이 끝나고 남편이 생전 처음 꽃다발을 들고 분장실로 찾아왔다.

“제가 무언가 존재감을 보여준 것 같았어요. 그거 하나는 확실히 채워줬어요. 그러니까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너무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모든 게 다 채워진 기분이었죠.”

그동안 극단 ‘마을’은 해마다 3월 또는 4월에 이삼일 정도 공연했으나, 올해는 150석 소극장으로 무대를 옮긴 데다 관객들의 권유로 일주일간 공연 욕심을 냈다. 내년부터는 벚꽃 피는 봄과 단풍 드는 가을에 두 차례 공연을 꿈꾸고 있다. 또 마을로 직접 찾아가는 공연을 하기 위해 정기공연 수익금의 일정 부분을 따로 모으고 있다.

“마을 극단을 하면서 예술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고 있어요. 아이들은 단순하게 발성을 해서 자기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또 어른들도 자기를 자신 있게 드러냄으로써 생활의 변화를 느끼게 될 때 즐거워해요.”

‘농부 연극인’ 이상직씨가 꿈꾸는 풀뿌리연극운동이 5년째 무르익고 있다.

구례/글·사진 정상영 선임기자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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