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선은 그 어렵다는 단소 산조의 전통을 꿋꿋이 잇겠다고 다짐한다. 김하현은 개량 국악기 옥류금(玉流琴)으로 재즈 등과 다양한 음악적 결합을 이뤄내고 싶다. 두 사람은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이 공모하는 국악계 신인 등용문 ‘청춘가악’에 뽑혔다.
박지선(30)의 단소는 ‘마음의 눈’(심안)에서 출발한다. 1급 시각장애인인 그는 일곱살 피아노를 배울 때부터 악보 전체가 아니라 한 줄 정도만 보였다. “지금도 책을 보면 한 쪽에서 두 글자만 보여요.” 그럼 도대체 단소는 어떻게 익혔을까. 박지선 단소의 뿌리를 캐자면 단소 산조의 창시자 추산 전용선(1888~1965)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추산의 맥을 이은 이용구한테 5년째 산조를 배우고 있다. 앞이 안 보이니 말로 전해주고 마음으로 가르치는 구전심수(口傳心授)로 배운다. “다른 친구들은 악보를 보고, 지휘자도 보며 연주하는데 저는 마디마디 다 외워 연주합니다.”
심안으로 악보를 읽고 부는 단소는 심금을 울린다. 박지선의 단소 산조는 맑은 음색과 농음(弄音, 즉흥적으로 내는 꾸밈음)이 좋다. 국악계 명인으로 이뤄진 심사위원들에게도 감동을 안겼다. 장애를 닫고 기성 국악인들도 하기 힘든 산조를 들고나왔기 때문이었다. 박지선은 “전통명인의 단소 산조의 맥을 잇는 젊은 연주자로 성장하겠다”는 각오다.
박지선이 전통의 맥을 잇는다면, 김하현(23)은 전통을 다양하게 재해석하고 싶다. 김하현은 북한에서 개량한 옥류금 연주자다. 옥구슬이 구르듯 맑은 음을 낸다는 뜻으로, 전통 와공후를 가야금처럼 눕혀놓고 연주하는 현악기다. 페달을 달아 조바꿈이 가능해 크로스오버나 재즈 연주에도 적합하다. 반음을 내리거나 올리는 조바꿈은 서양음악과 협연이 쉽기 때문이다.
악기 앞쪽에 ‘은방울’이라는 상표가 선명하다. 평양에서 만든 걸 일본, 중국을 통해 들여온다. 그러다 보니 마음대로 악기를 고를 수 없다. 고장이 나도 고칠 방법이 없다. ‘선택 불가, 반품 불가, 수리 불가’라는 말도 나온다. 가야금으로 시작해, 대학 때부터 옥류금을 배웠다. “줄이 33개라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음역이 넓고 표현력이 뛰어납니다.”
김하현의 꿈은 ‘청바지를 입은 옥류금 연주자’다. 청바지를 입고 북한에서 만든 악기를 홍대에서 연주하는, 김하현 스타일의 옥류금을 들려주겠다는 생각이다.
박지선과 김하현을 비롯해 국악계 신인 등용문 ‘청춘가악’에 뽑힌 9명의 연주자는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엠씨어터 무대에 오른다. 지휘 유용성, 작곡 이고운, 판소리 신지영, 거문고 이민영, 아쟁 서수진, 피리 김태형, 연희 타고(TAGO) 등이다. 30살 이하 젊은 국악인과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이 협연하는 이번 무대는 미래의 명인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유경화 서울시청소년국악단 단장은 “전통 계승을 넘어 국악의 숨겨진 무기들을 끄집어내고, 새로운 문을 두드리는 젊은 국악인들의 도전을 응원하는 무대”라고 이번 연주의 의미를 짚었다.(02)399-1181~3.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