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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거친 나무판에 아프게 새긴 ‘2014년 대한민국’

등록 2015-04-16 19:04수정 2015-04-17 17:49

15일 금호미술관 전시장에서 세월호 참사 등을 형상화한 대작 ‘2014 뉴스와 사건’ 앞에 선 서용선 작가. 사진 노형석 기자
15일 금호미술관 전시장에서 세월호 참사 등을 형상화한 대작 ‘2014 뉴스와 사건’ 앞에 선 서용선 작가. 사진 노형석 기자
세월호 담은 신작 낸 서용선
어떻게 그릴 것인가. 버거운 비극의 이미지들 앞에서 화가는 고뇌했다. 천으로 짠 화폭에 붓질만 하는 건 너무 밋밋할 듯했다. 칼질당한 나무쪽이 제격이겠어, 작가는 묘수를 찾았다. 도마 내리치듯 빗살모양 칼자국이 가득 패인 나무판에 세월호의 뒤집힌 푸른빛 선체를 그려넣었다. 선체를 중심으로 지난해 한국을 수렁에 빠뜨렸던 기억들의 장면장면을 열네쪽 나무판 위로 차례차례 올렸다. 누런 만장 들고 행진하는 세월호 유족들을 화폭 위 구석에 몰아넣었다. 가로막는 전투경찰들은 세월호 선체 아래 석수처럼 버텨선 모습으로, 그 옆에는 통진당 해산을 결정한 헌재재판관들의 뻘건 얼굴들이 도열했다. 화폭 다른쪽엔 굽실거리며 임명장을 받는 관료들이 군복차림 아버지와 함께 선 지금 대통령 모습과 나란히 흘러간다.

세월호 참사…통진당 사태…
육송판 열네쪽 잇댄 화폭에
버거운 비극 칼집 내 표현
세월호 순례단 담은 소품도

중견작가 서용선(64)씨의 신작 ‘2014 뉴스와 사건’은 정직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작가는 길이 5m 넘는 이 대작을 그리기 전 육송판 열네쪽을 일일이 깎고 잇대어 화폭을 만들었다. 칼집을 낸 화폭 위에 아크릴로 세월호와 통진당 사태의 이미지들을 거칠게 그린 뒤 색을 벗기고 다시 그려넣기를 거듭했다. 아픈 기억을 갈고닦는 작업 과정이 비뚤비뚤한 육송 화폭에 그대로 남았다. “형언 못할 만큼 센 충격을 주었던 사건들이라 평면을 넘어선 목판각화로 이미지를 휙 던지고 싶었어요. 나무판 위에서는 그림이 단순해지고, 표현이 제약되지만, 거친 질감과 칼자국들이 지난해 덮친 아픈 기억들을 더욱 진득하게 떠올려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씨는 30여년간 조선 단종의 죽음과 한국전쟁 같은 비극들을 역사화로 옮기면서 현대도시 군상들의 차갑고 처연한 모습들을 함께 그려왔다. 소재는 달랐지만, 이 인문주의자 화가에게 실마리는 언제나 현실 속 인간의 모습들이었다. 역사와 현실의 격랑에 휘말린 인간군상들을 관찰해 원색과 날카로운 선이 맞부딪히는 그림들로 표출해온 작가는 지난해 6월 또다른 인간극장이 펼쳐진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지척인 해남군 이마도에 임시작업실을 두고 1달에 4~5번씩 오가면서 현장의 아픔을 붓으로 기록했다. 평면의 한계를 넘어 좀더 넘치는 공간감을 전달하고 싶다는 조형의지가 상상력을 재촉했다.

17일부터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과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시작한 개인전 ‘서용선의 도시 그리기’에서 그 생생한 작가의 기록들과 만나게 된다.

주요 출품작들은 수년간 베를린, 베이징, 뉴욕, 서울 등을 오가며 그린 도시 연작들이지만, 고갱이는 세월호 신작들을 내건 미술관 1층에 있다. 대작 ‘…뉴스와 사건’과 더불어 걸린 소품 ‘세월호 순례단 1·2’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의 행렬과 주변 배경을 녹색과 푸른색의 비현실적 색채로 온통 뒤덮었다. 터벅터벅 시골길 걸어가는 세월호 순례단을 넋놓고 본 기억이 바탕이 된 작품이다. “팽목항 앞의 막막한 수평선을 보면서 참사에 휩쓸린 인간의 운명이 너무 덧없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나 자신이 더 깊이 이 비극을 실감하고 삭여야겠다는 마음으로 지난 1년간 그렸어요”라고 작가는 털어놓았다.

미술관 지하와 2, 3층, 학고재에는 현대권력공간인 주요 대도시 안을 떠도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부각시킨 작업들과 나무로 깎은 도시인 얼굴상들이 나와있다. 특유의 차가운 원색과 지하철 등의 냉혹한 도시공간들이 여전히 주된 소재들지만, 쓰지않던 간색들을 섞어 인물들의 세부를 따스한 톤으로 묘사한 부분들도 간간이 드러나 또다른 화풍의 변화를 짐작하게도 한다. 5월17일까지. (02)720-5114.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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