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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판으로 판벌인 ‘옵바는 음반쟁이야’

등록 2015-04-19 20:07

고음반 추적자들의 고음반토크
10명의 고음반 추적자들이 <반락(盤樂), 그 남자의 음반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 맨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양정환, 정창관, 노재명, 김문성, 이준희, 배연형, 최상일, 김호성, 이진원, 이규호.
10명의 고음반 추적자들이 <반락(盤樂), 그 남자의 음반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 맨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양정환, 정창관, 노재명, 김문성, 이준희, 배연형, 최상일, 김호성, 이진원, 이규호.
일순간, 인생이 바뀐다. 우연이었다. 지나고 보니 필연이었다. 김문성은 1996년 서울 황학동 뒷골목 엘피가게에서 뜻밖에 김옥심 명창을 만났다. 낡은 음반은 먼지의 더께를 툭툭 털며 그와 눈을 맞췄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가 파리 헌책방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를 찾아냈듯, 음악학자 레모 자초토가 2차 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독일 드레스덴의 도서관에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악보를 찾아냈듯. 우연은 필연이었다. 김문성은 김옥심의 소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단소에 빠진 과학도 이진원은 유성기 음반을 연구하는 한국고음반연구회에 가입했다. 김문성과 이진원을 비롯해 10명의 고음반 추적자들이 <반락(盤樂), 그 남자의 음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

양정환·정창관·배연형·김문성…
고음반에 사로잡힌 영혼 뭉쳐
난 국악·난 기악·난 판소리
난 베토벤 교향곡 5번만 300장
음반과 얽힌 에피소드 담아
10명 고음반 이야기쇼 ‘반락’ 공연

■ “고음반 얘기를 무대로” 도원결의

2010년 추석 밤 12시. 진옥섭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은 양정환 음반기획자의 김포 집을 불쑥 찾았다. 명절에, 그것도 오밤중에 무례하게시리. 다행히 당시 양정환(60)과 진옥섭(51)은 총각이었다. 진옥섭은 그동안 ‘고음반에 사로잡힌 영혼’ 양정환의 얘기에 귀가 솔깃했다. “음, 이건 얘기가 돼!” 양정환은 서울 청계천, 장안평, 황학동은 물론 대구 골동품 거리까지 발품을 팔지 않은 곳이 드물었다. “흠, 정말 대단하군!” 그가 유성기판이나 엘피판을 집어들며 미간을 좁히며 눈을 반짝이는 장면이 ‘안 봐도 비디오’다.

‘사로잡힌 영혼’의 이야기는 진옥섭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두어 번 더 만나면서 진옥섭과 양정환은 의기투합했다. “판(음반)으로 판을 한판 벌여 보자. 음반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로 말이지. 얘기도 하고 음반도 들려주면 좋은 공연이 될 거야!” 양정환은 평소 알고 지내던 고음반 수집가 정창관(63)과 배연형(58)을 끌어들였다. 유비, 관우, 장비처럼 ‘도원결의’를 했다. 양정환, 정창관, 배연형 세 고음반 마니아에 공연기획자 진옥섭이 붙었다. 고음반 이야기쇼 <반락>의 탄생 설화다. 그해 10월13일 양정환이 유성기 음반으로 <옵바는 음반쟁이야>, 27일 정창관이 시디로 <잽이 홀린 음반 서생>, 11월10일 배연형이 유성기 음반으로 <류성긔판 소리 왓소>를 공연했다. 지난해까지 3명씩 4번 무대에 올렸으니 모두 12명의 고음반 애호가들이 <반락>에 출연했다. 그중 사정이 여의치 않은 2명을 빼고 이번에 10명이 다시 모인 것이다.

고음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고음반 연구가들. 왼쪽부터 이준희, 김문성, 이규호.
고음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고음반 연구가들. 왼쪽부터 이준희, 김문성, 이규호.
■ 첫눈에 서로 알아챈 ‘음반 사냥꾼’

양정환과 배연형이 처음 만난 장소도 뒷골목 음반가게다. 1983년께 이들은 청계천 10여 곳과 황학동 10여곳을 누볐다. “내가 국악 음반을 고르면, 배 선생이 뒤로 물러나 물끄러미 쳐다보더라고요. 내가 고르고 나면 그분도 따라 고르고. 그러다 별로 외향적인 성격도 아닌 배 선생이 먼저 내게 말을 걸더라고.”(양정환) 첫 만남에 다방까지 가서 세 시간 가까이 국악 음반으로 얘기꽂을 피웠다.

양정환은 주로 정악(기악곡) 엘피판을 수집했고, 배연형은 판소리 유성기 음반을 모았다. “배 선생은 나한테 고종 앞에서 대금을 불던 김계선의 ‘청성곡’과 ‘상영산’ 음반을 카세트로 복사해 줬어요. 나는 배 선생한테 1960년대 박록주 명창의 <홍보가> 3장을 복사해 줬고요. 서로한테 필요한 걸 보완해준 것이죠.”

양정환이 정창관(63)을 만난 건 훨씬 뒤다. 1987년 지인의 소개로 만난 정창관은 그냥 클래식 마니아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베토벤 교향곡 5번만 300장 모았다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이듬해인 1988년 정창관-양정환-배연형 3인이 비로소 마주했다. 서울 동숭동 인켈 음향기기회사에서 운영하는 음악감상실이었다. 그해 판소리 5명창(송만갑, 이동백, 김창환, 김창룡, 정정렬)의 엘피판이 이들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배연형이 소장한 1910~30년대 일본의 빅터, 콜롬비아 등에서 만든 희귀 음반을 복각한 것이다.

이듬해인 1989년엔 이화중선의 유성기 음반을 엘피로 복각했다. 세 사람은 같은 해 한국고음반연구회를 결성하기로 하고, 이보형 선생을 회장으로 모셨다. 1990년 10월27일, 고음반연구회가 출범했다. ‘따로 놀던’ 고음반 마니아들이 ‘조직원’이 됐다.

일제 강점기 일본 빅터사에서 만든 음반.
일제 강점기 일본 빅터사에서 만든 음반.
■ 사로잡힌 영혼, 저당잡힌 생애

어디 이들 셋뿐일까? <반락>의 다른 이들도 이력이 만만찮다.

황학동에서 김옥심 명창에 반했던 김문성(44)은 경서도잡가 10바탕 복원사업에 참여했다. 이준희(43)는 중학생 때 고전가요에 홀딱 반했다. 근대가요 황금시대의 황금심, 박단마, 장세정의 구성진 소리와 굴곡진 생애를 ‘스토킹’해왔다.

노재명(46)은 고교 때 빠진 국악 엘피판에 평생을 저당잡혀 고음반연구회 최연소 회원이 됐다. 28년간 6만3000점의 국악 자료를 수집해 13년째 국악음반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진원(46)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취미로 단소를 불다 카이스트 대학원을 관두고 서울대 국악과를 들어갔다. 100여편의 논문과 저서로 전통음악 계보를 복원하고 있다.

이규호(62)는 26살에 판소리를 접하고 박초선 등 여러 명창한테 소리를 배웠다. 전주세계소리축제를 기획·출연했다. 문화방송 라디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로 유명한 최상일(58) 피디는 세계 각국의 민요에도 관심이 많다. 김호성(72)은 대금재비에서 성악으로 말을 갈아탔다. 지금은 국악방송 진행자다.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서도식)이 주최하는 <반락>은 진옥섭 감독의 연출로 지난 14일 서울 한국문화의집(코우스)에서 김문성·이준희가 테이프를 끊었다. 21일 노재명·이진원, 28일 배연형·이규호, 다음달 19일 정창관·최상일, 29일 김호성·양정환으로 이어진다. 옛 명반에서 뽑은 시디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02)3011-1720~1.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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