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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이반 피셔의 ‘베토벤 원곡을 위한 파격’

등록 2015-04-26 19:28

이반 피셔가 이끄는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이반 피셔가 이끄는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로열콘세르트헤바우’ 교향곡 전곡 연주
‘9번 합창’때 성악가들 연주자 사이에
앞쪽에 배치된 것과 다른 파격 배치
교향곡 성격 따라 매번 악기배치 달라
악보대로 구현하기 위한 효과적 방법
이반 피셔 “난 해석자 아니라 전달자”
지난 2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반 피셔(64)가 이끄는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가 나흘간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를 마무리 짓는 날이었다.

교향곡 9번 ‘합창’의 3악장이 시작되기 전, 무대로 걸어 나온 4명의 독창자는 각각 제1·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연주자들의 틈에 자리 잡았다.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 앞쪽에 나란히 자리하는 일반적인 배치와 달랐다. 의아함은 잠시였다. 4악장 도입부에서 더블베이스가 제시한 저음의 선율이 베이스 가수에 의해 반복되고, 이어서 베이스 가수의 독창과 현악 앙상블이 레치타티보(서창)를 주고받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가 하면, 같은 족(族) 악기인 플루트와 뚝 떨어져 타악기들 옆에 위치해 있던 피콜로는 4악장 피날레에 이르는 환희의 행진에서 트라이앵글과 함께 신선한 음향을 만들었다.

관습을 깨는 기발한 악기 배치와 음향의 신세계는 나머지 사흘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피셔는 곡마다 악기의 배치를 바꿔 중요하게 다뤄야 할 독주와 앙상블을 강조했다. 현악기부 한쪽에 쏠려 있던 더블베이스는 무대 뒤편 중앙에 고정해 저음역의 좌우 균형을 맞췄다.

나흘 중 최고의 호연은 셋째 날(22일) 6번 교향곡 ‘전원’이었다. 현악기부에 가려졌던 목관악기 수석들을 지휘자 앞으로 옮겨 놓자, 시냇가의 정경을 그린 2악장에서 나이팅게일(플루트), 메추리(오보에), 뻐꾸기(클라리넷)의 울음소리가 객석으로 상쾌하게 날아들었다. 3악장에서는 현악기 연주자들 사이에 숨겨 놓은 바순 연주자가 늙은 농부의 소박한 악기 연주를 묘사하며 익살스럽고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파격적으로 보이는 악기 배치는 주류와 달라서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이반 피셔의 이런 시도는 베토벤이 악보에 표기한 바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방법이다. “나는 해석자가 아니라 전달자”라던 피셔는 모든 것을 ‘전달력의 극대화’에 맞춘 듯했다.

피셔는 악보와 당시의 연주 경향에 충실했다. 베토벤 시대에 유행하지 않은 현악기의 비브라토를 걷어내 음색을 맑게 하고, 레가토(음과 음 사이를 끊지 않고 이어서 연주하는 것)와 논레가토의 구분을 비롯해 악상기호들을 꼼꼼하게 반영했다. 무심코 놓쳐 버리는 짧은 쉼표 길이조차 대충 넘기지 않았다. 젊은 시절 원전 연주의 대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부지휘자로 일하고, 시대악기 연주단체인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와의 베토벤 교향곡 연주로 평단의 찬사를 받은 그다웠다.

반면, 그는 메트로놈 숫자 대신 빠르기말로 제시된 속도감, 특별한 악상기호가 붙지 않은 목관 독주부의 어택(음의 도입) 등 베토벤이 상상력의 여지를 준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곡의 전달력을 끌어올렸다.

물론 나흘 모두 만족스러운 연주였던 것은 아니다. 3, 4번 교향곡을 연주한 둘째 날은 목관 악기와 호른의 음정이 불안정하고 앙상블이 깨지는 등 이전의 아르시오 내한 공연에서 보지 못한 실수들이 연발됐다. 트럼펫의 소릿결도 하나로 모이지 않고 갈라졌다. 4번 교향곡 2악장의 경우 절제된 표현이 뒤의 악장들과 대비를 이루긴 했지만, 이따금 단조롭고 지루했다. 그럼에도, 이반 피셔와 아르시오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는 한동안 여운을 떨치기 어려울 듯하다. 베토벤 교향곡에서 이만큼 개성 넘치면서 설득력 있는 연주를 만나기란 쉽지 않으니 말이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사진 빈체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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