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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사실 엄마아빠가 더 황홀했어, 90분의 아수라장

등록 2015-05-04 19:57수정 2015-05-04 19:57

‘이 시대 최고 광대’로 불리는 러시아 슬라바 폴루닌의 무언극 <스노우쇼>는 90분 동안 관객을 마법의 세계로 이끌었다. 엘지아트센터 제공
‘이 시대 최고 광대’로 불리는 러시아 슬라바 폴루닌의 무언극 <스노우쇼>는 90분 동안 관객을 마법의 세계로 이끌었다. 엘지아트센터 제공
[리뷰] 슬라바 폴루닌 무언극 ‘스노우쇼’
색색의 광대들 객석으로 ‘쑥’ 들어와
관객 위로 비눗방울…거미줄…공
강풍에 쏟아지는 종이 눈보라 ‘마법세계로’
앞니가 두개나 빠진 ‘미운 일곱살’의 입이 딱딱 벌어졌다. 공처럼 동그래진 눈앞으로 지름 2m가 넘는 공들이 달려왔다. 가로 1.5㎝ 세로 3㎝의 종잇조각 눈보라가 뺨을 후려쳤다. 광대들이 의자를 밟고 성큼성큼 객석으로 ‘난입’해 물을 뿌려댔다. 엄마 아빠의 입도 덩달아 딱딱 벌어졌다. 1100석의 관객은 2심방 2심실을 활짝 열고 심박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마법의 90분이다. 축제다. 놀이공원이다. 행복한 아수라장이다.

‘이 시대 최고 광대’로 불리는 러시아 슬라바 폴루닌의 무언극 <스노우쇼> 현장이다.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따뜻한 시선 그리고 애잔한 감성은 왜 이 무언극이 그토록 유명한지 ‘말이 필요 없이’ 보여줬다. 세계 100여곳에서 공연한 이 작품이 7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부산과 서울 공연을 앞두고, 지난 1일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5월의 눈보라 향연’을 미리 봤다.

줄거리는 필요 없다. 노란 옷과 녹색 옷의 광대들을 따라가면서 밧줄, 비눗방울, 거미줄, 공, 침대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객석까지 날아온 비눗방울은 고사리손과 만나 톡톡 터졌고, 천장에서 쏟아진 종잇조각은 아빠의 어깨에 살포시 걸터앉았다.

1막의 마지막 장면, 거대한 거미줄이 무대에서부터 서서히 객석으로 넘어왔다. 거미줄은 19열까지 있는 1층 객석 전체를 감쌌다. 관객은 모두 누에고치 속 꿈꾸는 애벌레가 됐다. 포유류로 치자면, 어머니의 자궁 같은 평화라고 할까. 막간 휴식시간에도 광대는 쉬지 않았다. 객석으로 넘어와 우산을 빙빙 돌리고, 생수통의 물을 마구 뿌려댔다.

이 공연의 백미는 역시 2막 마지막 장면.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중 ‘오 운명의 여신이여’(O, Fortuna)가 울려 퍼졌다. 무대가 일렁였다. 50여개의 강렬한 조명등이 일제히 객석을 향해 빛을 쏘았다. 항공기 프로펠러가 초강력 바람을 뿜어냈다. 일진광풍이다. 강풍에 실린 눈보라가 객석에 휘몰아쳤다. 3주 공연에 1톤 트럭 한대에 가득 찰 정도의 종잇조각이 사용됐다. 앞 관객의 긴 머리가 휘날렸다. 눈보라가 사정없이 볼을 때렸다.

이윽고 객석은 행복한 아수라장이다. 지름 2m가 넘는 붉은 공, 노란 공, 파란 공, 녹색 공들이 굴러 나와 관객 머리 위로 굴러다녔다. 연이어 지름 1m가 못 되는 공들도 객석으로 날아들었다. 공을 잡으려는 아이들, 공을 튕기는 어른들, 입이 귀에 걸린 아이들, 그걸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는 어른들. 아악, 악! 까르륵, 꺅! 이게 정말 공연장입니까?

공연에는 방겔리스(반젤리스)의 곡 ‘그들은 아직 어려요’(Sie sind noch jung)가 자주 나왔다. 애잔한 감성이 깔린 신비한 음색은 이 극과 잘 맞아떨어졌다. 결국 우린 모두 어린이라는 듯. 하지만 전세계 <스노우쇼> 팬들은 극의 주제가로 ‘푸른 카나리아’(Blue canary)를 꼽을 듯하다. 광대들이 장난감 손풍금을 연주할 때 나오는 노래다. 극의 주인공인 노란 옷의 광대는 아무래도 노란 카나리아를 상징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주제가 ‘푸른 카나리아’는 광대의 근원적 슬픔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부산 공연은 5~10일 영화의전당, 서울 공연은 14~30일 엘지아트센터. 일곱살 이상 입장.

대구/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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