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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조선의 천문도? 다시 한번 잘 들여다볼 것

등록 2015-05-05 20:19

사진전 ‘거짓말의 거짓말…’
허구·착시로 상상력 더하거나
이미지의 돌출적 부각 통해
상상력 단지로서의 사진 증명
“사진이란 허가증 같은 거다. 원하는 데는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으니까.”

미국의 지성으로 추앙받은 비평가 수전 손택(1933~2004)이 명저 <사진에 관하여>에서 남긴 독설은 현대사진의 정체성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진단이라 할 만하다. 지금 시대는 사진을 찍기보다는 난사한다는 말이 걸맞다. 사람들은 ‘디카’를 들고 닥치는 대로 이미지를 사냥하고, 포토샵으로 색감과 배경을 주무른다. 넘쳐흐르는 디지털 사진들은 세상 사물들을 다 갖고 싶다는 소유욕의 강박적 발현이다. 이젠 사진이 현실의 객관적 기록이란 통념을 말하기조차 머쓱해졌다.

손택이 말하듯 “사진이 세계를 백화점이나 벽 없는 미술관으로 뒤바꿔 놓아 버렸다”면, 찍는 행위로 승부를 거는 사진가들이나 사진 이미지들을 그러모아 작품을 만드는 미술가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지난달 23일부터 서울 토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거짓말의 거짓말: 사진에 관하여’전에서 이 물음에 대한 작가들의 고민과 응전을 본다. 사진을 활용해 작업하는 국내 주요 작가 18명의 작품들이 허구와 착시, 설치 등을 통한 사진의 다채로운 상상력을 풀어놓는다. 원래부터 거짓말 잘하는 장르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미술관 쪽 의도와 다르게, 출품작들은 전시의 명제를 슬그머니 뛰어넘거나 우회한다. 사진 또한 소설처럼 허구를 엮어 사람들 마음을 어루만지고 시대와 역사의 진실을 옮겨내는 장르임을 보여준다.

사진가 황규태씨의 출품작 ‘우라놀로지’.
사진가 황규태씨의 출품작 ‘우라놀로지’.
다큐사진가 노순택씨는 연평도 포격 당시 뒤집혀 방치된 차량의 이미지를 세 개의 사진으로 갈라 보여준다. 그냥 보면 교통사고 같지만, 이 차에 깃든 분단과 전쟁의 맥락을 알고 보면 숙연해진다. 이렇게 이미지들의 몽타주를 돌출적으로 부각시켜 의미와 배경을 이야기하는 형식은 동일본 대지진 현장에 남겨진 야구글러브, 카메라 등에 초점을 맞춰 찍은 박진영씨의 작업에서도 재연된다. 승용차를 갖고 들어온 설치작가 정연두씨의 자동차극장은 차 안에 앉아 기기를 켜면 차 앞 자막에 영화처럼 음악과 함께 탑승한 관객의 모습이 흘러가는 작업인데, 나른한 자기 위안과 서정의 세계가 우러나온다. 백승우 사진가는 벼룩시장 등에서 수집한 이름 없는 이들의 무수한 사진들을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각자 연상되는 이야기들을 기록한 작품을 내놓았다. 실물을 창작하지 않고 작가가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한 마르셀 뒤샹의 개념적 미술을 사진으로 변주한 셈이다. 황규태 사진가는 먼지 끼고 흠집 간 손목시계 이미지를 명암을 바꾼 뒤 확대해 조선시대 천문도처럼 만들었다. 일종의 가짜 사진이지만, 우주의 그림 속에서 별과 성운이 된 먼지의 모습은 존재의 심오함을 새삼 되짚게 한다. 이런 존재론적 성찰은 닳고 닳은 비누를 오래된 운석이나 원석 보듯 세세하게 포착한 구본창씨의 사진들에서도 느낄 수 있다. 작가들 앵글은 세상 사람들처럼 제각각이다. ‘왜 사진만 허구를 갖고 놀면 안 되느냐’고 웅변하는 출품작들 앞에서 기록 아닌 상상력 단지로서의 사진 또한 건재하다는 위안을 얻게 된다. 6월21일까지. (02)379-7037.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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