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낮(현지시간) 공개된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앞에서 현지 관객들이 전시를 보려고 긴줄을 섰다. 배우 임수정씨가 미래소녀로 등장하는 첨단 곡면 엘이디영상이 건물 정면을 뒤덮은 모습이 보인다. 사진 노형석 기자
임수정과 첨단 엘이디(LED)동영상. 베네치아로 날아간 한국현대미술을 구원한 것은 한국의 젊은 여배우와 특유의 아이티신기술이었다.
세계 최고권위의 미술잔치인 56회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작가로 참여하는 문경원, 전준호 작가의 작품이 6일 낮(현지시각) 시내 카스텔로 공원 안에 있는 한국관에서 공개됐다. 관객들 눈길은 일제히 전시관 외벽으로 쏠렸다. 순백의 미래소녀로 탈바꿈한 배우 임수정의 얼굴과 몸짓을 담은 엘이디 동영상이 한국관의 둥글둥글한 외벽을 온통 뒤덮었다. 5mm짜리 발광체들이 들어찬 채 부드럽게 휘어진 고화질 엘이디 화면이 영상판 그 자체로 건축물을 감싸는 외장재 패널이 됐다. 이 외벽의 엘이디 영상에서는 한국관 안에서 상영중인 두 작가의 출품작 ‘축지법과 비행술’을 다시 대형화면으로 풀어 보여준다. 대홍수와 바다의 범람으로 인류가 절멸한 미래에 유일한 생존자로 남은 주인공 임수정이 과거 인류의 문화적 기억을 되찾아가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내용이다. 전시를 본 임근혜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은 “캄캄한 곳에서 미디어영상을 보는 관행을 정면으로 뒤집고 외벽의 건축재로 쓰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1995년 김석철 건축가의 설계로 들어선 한국관은 빛이 들어오는 투명한 곡면의 유리외벽으로 곳곳이 마감돼 전시여건이 최악이라는 악평을 받아왔다. 전시커미셔너 이숙경(영국 테이트미술관 큐레이터)씨는 “출품작 영상을 건축과 한몸으로 만들어 이 건축의 특징을 잘 드러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작품 내용 자체가 워낙 거대담론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 서사적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종종 나오지만, 눈길 잡기에는 성공했다는 평가다. 김석철 공간의 한계에 가위눌렸던 한국관이 처음 제대로 공간을 재해석하고 활용한 사례라는 호평들이 잇따랐다.
실제로 장 드 르와지 팔레 드 도쿄 관장, 마이클 고반, 미국 라크마미술관장, 행위예술 거장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등이 이날 한국관을 찾았고, 서구 언론사들의 취재도 잇따랐다. 이날 저녁 산마르코광장 부근의 호텔에서 열린 리셉션에는 세계적인 기획자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후미오 난조 모리미술관장, 로랑 헤기 파리 생테티엔느미술관장, 홍라희 삼성미술관리움관장,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 등 200명이 넘는 국내외 축하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아프리카 출신의 총감독 오퀴이 엔위저가 기획한 베니스 비엔날레는 9일 정식 개막식과 함께 국가관상, 최우수작가(황금사자상) 시상식을 연다.
베네치아/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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