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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연극 ‘피가로의 결혼’…귀족·왕비 사로잡은 귀족비판극

등록 2005-10-05 17:12수정 2005-10-06 14:29

노승림의무대X파일
오늘날 모차르트의 오페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피가로의 결혼>은 오페라 이전에 연극을 위해 쓰여진 희곡이었다. 원작자인 피에르 오귀스탱 카롱 드 보마르셰는 본래 왕실 시계공 출신이었다. 시계공 일을 그만둔 뒤에는 발명가, 모험가, 왕의 고문, 출판업자, 극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중년 이후 사업에 실패해 두달간 감옥신세를 졌다. 이 투옥 경험은 결정적으로 보마르셰에게 창작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는데, 이전까지 왕족과 돈독하게 잘 지내다가 이때부터 권력 기반 전반에 대해 불신과 악의를 품게 되었다. 출소하고 2년 뒤, 그는 <세비야의 이발사>를 필두로 <피가로의 결혼> <어머니의 책임>로 이어지는 유명한 희곡 3부작을 완성시켰다.

3부작 중 <피가로의 결혼>은 1부 <세비야의 이발사>가 공연계에서 성공을 거두자 동일 인물을 등장시켜 쓴 속편이다. 작가는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자신의 개인적이고 자전적인 색채를 부각시킨 반면,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사회에 대한 불신과 희롱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권세에 복종하고 아첨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든가 “그만한 명예를 얻기 위해 대체 당신이 한 일이 무엇인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밖에 더했는가?”라고, 피가로가 주인 알마비바 백작에게 던지는 비판적인 대사는 권력의 정점에 있던 루이 16세의 신경에 극히 거슬렸다. 루이 16세와 프랑스 왕실 검열관은 귀족을 비웃고 있다는 점, 그리고 백작이 이미 법적으로 금지된 결혼초야권을 주장하는 음란한 인물로 설정되었다는 두가지 이유로 <피가로의 결혼>의 상연을 금지시켰다. 검열에 통과하기 위해 보마르셰는 다섯 번에 걸쳐 작품을 수정했지만 검열관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에 보마르셰는 작전을 바꿔, 살롱에서 <피가로의 결혼> 낭독회를 열어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비방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귀족들은 작가의 맛깔스런 대사와 재미있는 상황 설정에 환호를 보냈다. 낭독회는 갈수록 횟수가 늘어갔다. 어느 정도로 인기였는지 당시 어느 귀족부인이 남긴 메모의 의하면, 당시 귀족 사이의 인사가 “낭독회에 갔었습니까?” “갈 예정입니다”로 통했을 정도라고 한다.

낭독회의 인기가 더해가면 갈수록 왕의 분노는 정비례로 치솟았다. 그러나 귀족은 물론 앙트와네트 왕비, 심지어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왕비까지 등에 업은 보마르셰의 후원세력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독재자’라느니, ‘탄압’이라느니 수군거리자 왕은 결국 귀족의 사택에서만 공연하는 것을 조건으로 연극상연을 허락했다. 1784년 4월27일 초연된 연극 <피가로의 결혼>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침부터 극장으로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 절반만이 운좋게 입장하여 관람하였으며, 입장권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앞다투어 밀려드는 바람에 3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피가로의 결혼>은 <세비야의 이발사>를 능가하는 부와 명성을 보마르셰에게 안겨주었지만, 보마르셰는 이 연극으로 번 돈을 모두 구빈원에 기부했다.

노승림 공연 칼럼니스트/성남문화재단 홍보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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