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집 한꺼번에 낸 가수 손병휘
쌍용차 해고자·세월호 등
6집엔 시대에 대한 노래를
7집엔 사랑·이별 노래 수록
‘민중가수’로는 부르지 못한
쌓여있는 사랑의 말 담아내
‘거리의 가수’ 손병휘 씨.
‘거리의 가수’ 손병휘(50)가 6집과 7집, 두 장의 앨범을 한꺼번에 들고 돌아왔다. 한 앨범에 두 장이 담기는 더블 앨범도 아니고 정규 앨범을 두 개를 한꺼번에 낸 까닭을 손병휘는 “자아 분열” 탓으로 돌린다. 2012년 5집을 낸 뒤 쌓아둔 100곡 노래를 추리고 추려 2장으로 녹음했다. 올해 6집을 내고 내년에 7집을 내면 어떨까? 제작자 손병휘는 음악가 손병휘가 1년 뒤 재녹음하자고 하면 돈이 더 드니까 지금 바로 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음악가 손병휘는 “내 마음속의 로맨스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꼭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었다. 그래서 시대에 대한 노래를 담은 6집 <꺾이지 않기 위하여>와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7집 <추억은 힘>이라는 두 음반이 13일 함께 세상에 나온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고동민의 글로 만든 노래 ‘우리가 희망’이나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잊지 않을 거야’가 담겨 있긴 하지만 6집이 ‘투쟁가’는 아니다. “세상이 나를 몰라도 그건 어쩔 수 없지/ 왜 그리 답답하냐고 물어도 웃을 수밖에/ 어떻게 살아갈 건가 가르치지 말았으면/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묻지 않았으면 하지”라는 ‘너의 노래’처럼 서정적인 시에 가깝다. 1993년 서총련 노래단 ‘조국과 청춘’으로 노래활동을 시작한 가수 손병휘는 그룹 ‘노래 마을’을 거쳐 1999년엔 솔로로 독립하면서 자신이 갈 길이 ‘민중 가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음악 창작작업을 통한 자기 만족이 없다면 참 힘들었을 거다. 집회에서 많이 불렀지만 실은 내 노래는 실내에서 조근조근 속삭이는 게 더 어울리는 음악이다. 그런 곡을 만들고, 부르고 싶은 갈증 때문에 창작하고 음반을 냈다. 역으로 창작을 동력 삼아 집회 현장에서도 계속 노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상업 음악은 에로스가 너무 많아서 탈인데, 에로스가 아예 배제된 민중가요라는 진영의 노래만 불러야 했던” 그에게 쌓여 있는 사랑의 말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7집 첫곡이 ‘서른네번의 프로포즈’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는 물론 고대 수메르어, 나바호 인디언의 말 등 34가지 말을 동원해 “사랑해”를 속삭인다. 노래 ‘이런 날에는’은 스무살의 추억, ‘그대 있기에’는 현재진행형의 사랑이다.
두 개의 음반이 한 가지로는 말해지지 않는다. 그게 ‘손병휘식’이다. 사람들은 공연장보다 집회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그를 ‘민중가수’라고 불렀다. 손병휘는 보편적인 상식과 정서를 지닌 ‘시민 가수’가 되려고 했다. 곡을 만들고 쓰니까 싱어송라이터라고 불리지만 앨범을 낼 때마다 가진 돈을 몽땅 털곤 하는 바람에 알고 보면 ‘싱어송라이터 앤 프로듀서’다. ‘운동권 가수’라고 저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싱글몰트위스키소사이어티 회장을 맡고 있는 그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음주 시인’이라고 부른다. 투사면서 한량이고, 여유있게 가난하다.
글·사진·영상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손병휘 7집 <추억은 힘> 중 34번의 프로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