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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예술가들의 욕망과 고민을 엿본다

등록 2015-05-16 10:31

연극 ‘곡비’. 사진 김도웅 제공
연극 ‘곡비’. 사진 김도웅 제공
[리뷰] 구자혜 작·연출 ‘곡비’--대신 울어주는 사람
눈물 한 방울은 동전 한닢. 울음 한 모금도 동전 한닢. 초상집에서는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곡비(哭婢)는 돈을 받고 곡(哭)하는 사람이다. 슬픔에서 공감을 끌어내 슬픔을 위로했다. 오늘날 예술가는 곡비의 후예다. 예술가는 울음을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예술가는 이야기를 대신해주는 사람이다. <천일야화>의 세라자드는 1001일의 밤마다 이야기를 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멈췄을 때 닥칠 물리적 죽음은 곧 이야기를 멈춘 작가의 예술적 죽음이기도 하다.

세라자드와 곡비의 운명은 서로 닮았다. 이야기를 멈추는 순간, 그리고 대신 울어주는 울음을 멈춘 순간 작가는 죽는 것이다. 구자혜 작·연출의 연극 <곡비>는 이런 물러날 곳이 없는 작가의 운명을 은유했다. 4월 말부터 지난 10일까지 서울 혜화동1번지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혜화동 1번지’ 6기 동인의 봄페스티벌 ‘총체적 난극’의 하나로 공연됐다.

연극은 “곡비라는 직업이 왜 있는거지?”라고 반복해서 묻는다. 그 질문은 “왜 예술가가 필요하지?”라고 묻는 것과 같다. 연극에는 곡비(전박찬 분), 소비(김정훈 분), 위대한 곡비(권정훈 분)가 나온다. 모두 남자 배우다. 소비(笑婢)는 웃음을 대신 웃어주는 자이고, 위대한 곡비는 청년 곡비와 청년 소비가 다가갈 수 없는 경지에 오른 곡비다.

곡비는 누구를 위해 울어야 할까? 위대한 곡비는 “이제 명문대학 부속 병원, 혹은 기업을 끼고 있는 아주 큰 규모의 병원 장례식장에서만 운다.” 어쩌면 성공한 작가들이 더 이상 소극장이 아닌 대학이나 기업이 세운 대형 공연장에서만 작품을 올리는 걸 빗대는 건지 모른다. 소비는 ‘성공한 사람들의 죽음을 대신 울어주는’ 위대한 곡비를 비판한다. 소비는 곡비에게 ‘불행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울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연극 ‘곡비’. 사진 김도웅 제공
연극 ‘곡비’. 사진 김도웅 제공
“네가 나에게 적은 글자들은 축축한 종이 위에서 떨고 있었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행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만약 A라는 사람이 불행을 겪고 있다면, A는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다. A가 불행을 겪기 때문에 나는 그 불행에서 피해갈 수 있었던 거다. 불행의 총량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나대신 불행을 겪고 있는 A를 위해 운다.’ ”

소비는 곡비를 비웃는다. “넌 칭찬받고 싶어 안달난 개같아!” 작가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대중의 사랑을 구걸하는 푸들’인가? 그렇다면 소비는 ‘성공한 작가’인 위대한 곡비를 정면비판한 셈이다. 하지만 소비와 곡비는 깊은 입맞춤을 나눈다. 울음은 웃음과 뗄래야 뗄 수 없다는 듯이. 이 대목은 동성애코드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무대는 극도로 단순하다. 사방이 검은 벽으로 둘러싸인 무대 한 복판에 좁은 런웨이만 자리잡았다. 최소한의 무대장치 때문에 공연 내내 배우들에게만 시선이 집중된다. 관객은 80분 동안 배우의 울음과 눈물을 마주해야 한다. 고도의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관객에겐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손준현 기자dust@hani.co.kr, 사진 김도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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