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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조선 백자, 반쪽 얼굴을 채우다

등록 2015-05-27 20:11수정 2015-05-27 21:04

백자철화매죽문시명호(17세기)
백자철화매죽문시명호(17세기)
이화여대 박물관 600여점 특별전시
문인정신 담은 정제된 초기 백자서
중후기 갈수록 감정·지역특색 담겨
동물·화초 무늬…색감도 다양해져
얼굴형명기(17세기)
얼굴형명기(17세기)
백자라고 다 같은 백자들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 얼굴처럼 각기 다른 내력과 스타일을 지닌 시대의 얼굴이 바로 백자들이다. 서울 신촌 이화여대 박물관 1, 2층을 촘촘히 메운 조선 백자들의 향연은 이 당연하지만 낯선 진실을 이야기해준다. 한국 도자기 대명사인 조선 백자를 희디흰 빛깔과 달항아리의 둥글둥글하고 푸근한 모양새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 난장을 훑고나면 그것은 극히 일부분의 특징이자 선입관이란 것을 실감하게 될 터다.

백자 명품들 많기로 소문난 이화여대 박물관이 1년여간 작심하고 준비해 27일 막을 올린 특별전 ‘조선백자’에는 600점 넘는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 청화백자들을 무더기 출품해 눈길을 모았던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청화백자’ 전을 능가하는 역대 최대의 백자 컬렉션 잔치다. 관객들은 엄격한 성리학사상으로 500여년을 버텼던 유교국가 조선의 사상적 성취와 그 이면의 민낯 같은 욕망들을 갖가지 백자들의 자태로 실감할 수 있다. 도자기야말로 선조들의 생각과 사상, 욕망, 감정 따위를 가장 도드라진 덩어리감과 때깔로 감각할 수 있는 유물인 까닭이다.

왕실, 사대부가 백자들로 채운 전시 초반부는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 청화백자’전과 비슷한 구성이다. 15세기부터 국가가 운영한 관요에서 제작했던 정제된 외형과 빛깔의 초기 백자들의 마당이다. 어깨 넓은 항아리에 청화안료로 당당한 용의 자태를 그려넣은 ‘용준’과 고려청자의 몸체를 계승하며 직립한 순백자병의 고고한 품격, 무덤 속에 넣은 미니백자인 명기와 지석, 사대부들 방을 수놓았던 매, 난, 국, 죽 등을 그려넣은 청화백자 병들이 드높았던 성리학적 기풍을 대변한다. 특히 문인정신의 진수인 백자매죽문시명호는 자주 공개되지 않았던 명품으로 전시의 압권으로 꼽힌다. 철사안료로 사선구도의 가지 엇갈린 매화·대나무를 그려넣고 15세기 문인 월사 이정귀의 음주 풍류 싯구를 써넣은 이 매혹적인 백자항아리는 입체적인 문인화에 다름 아니다.

기획의 진가는 중반부 이후부터 드러난다. 사람들의 욕망, 감정, 취향, 지역적 특색 등이 속속 드러나는 조선 중후기, 말기의 다종다양한 세속적 백자들 덕분이다. 이 작품들은 의미보다는 파격과 재미, 취향의 세계다. 엄격한 사군자 풍의 식물 무늬를 쓰던 백자 문양들이 소상팔경도와 선인 풍류도, 산수화 등으로 다양화되는 양상과 분청무늬 같이 추상적이고 만화적인 문양들이 등장하는 지방 백자들의 별세계가 펼쳐진다. 이대 박물관의 비장품인 경기, 경상도 지방 민요에서 빚은 백자들은 텁텁한 흙빛 태토에 추상정신이 번뜩거리는 각종 동물 무늬와 화초 무늬들의 매력이 분방하다. 최근 경기도 양평군 합판리에서 출토된 용무늬 백자호는 익살스럽고도 정겨운 용의 아이 같은 표정과 앙증맞은 꿈틀거림이 사랑스럽다. 황해도 해주에서 19세기 태동한 해주항아리의 명쾌한 푸른빛 색감과 두껍게 유약을 씌우며 색감이 아롱지듯 스며드는 회령요의 조형미도 빼놓을 수 없는 감상거리다.

백자철화운룡문호(17~18세기)
백자철화운룡문호(17~18세기)
산형연적(19세기)
산형연적(19세기)
또다른 눈대목은 후기, 말기의 길상문 백자들이다. 민화의 주요도상인 호랑이나 책가도 그림의 기물들을 백자 문양에 활용하고 수(壽)복(福)등의 길상문자들을 결합시켜 또다른 대중적 미학을 낳은 각종 청화 그릇, 접시, 항아리 등이 무수히 많다. 태토와 용도에 따라 흙빛, 푸른빛, 자색, 회색조 등 다채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백자의 색감들을 파편별로 구분해 놓고 만지며 일별할 수 있는 체험장도 만들어놓았다. 백자의 다기한 500년사를 눈맛으로 보고 나면 맨 마지막방에서 박물관 최고의 소장품인 국보 백자철화포도문호의 단독 진열장을 만난다. 이 학교 초대총장 김활란이 당대 최고 컬렉터였던 정치가 장택상에게 간청을 거듭한 끝에 거금을 주고 사들여 이대의 보물로 애지중지 소장해온 국내 백자의 최고 명품을 보면서 전시 뒷맛을 갈무리하게 된다. 역대 어느시대든 특정한 사상과 보편적인 인간 욕망이 어우러져 한 시대의 문화를 빚어낸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전시다. 내년 1월30일까지. (02)3277-3152.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이화여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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