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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100년을 감아 본 ‘밥벌이의 고단함’

등록 2015-05-28 18:45수정 2015-05-28 20:50

하룬 파로키와 안톄 에만의 몽타주 영상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의 도입부 장면.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같은 제목으로 만든 세계 최초 영화의 한 장면을 따온 것으로 당시 노동자들이 공장 밖으로 퇴근하는 모습을 부각시켜 보여준다. 사진 노형석 기자
하룬 파로키와 안톄 에만의 몽타주 영상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의 도입부 장면.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같은 제목으로 만든 세계 최초 영화의 한 장면을 따온 것으로 당시 노동자들이 공장 밖으로 퇴근하는 모습을 부각시켜 보여준다. 사진 노형석 기자
코리아나미술관 ‘필름 몽타주’ 전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세계 최초의 영화는 정장차림으로 공장에서 퇴근하는 남녀 노동자들의 무리를 찍은 것이었다. 제목은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이다. 잡담하며 공장 문을 나서는 노동자들의 빤한 일상을 왜 첫 영화 소재로 택했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움직임 자체에 대중이 열광했던 초창기 ‘활동사진’ 형식에 가장 걸맞는 역동성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딱 100년 뒤인 1995년. 독일의 미디어작가 하룬 파로키(1944~2014)와 동료 안체 에만은 뤼미에르 영화와 제목은 같으나 내용은 전혀 다른, 생뚱맞은 오마주 영상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은 뤼미에르의 첫 영화 장면들을 시작으로 100년간 쏟아진 수십편 영화 속의 노동자 퇴근 장면들이 짜깁기한 것이다. 배우 마릴린 먼로가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남자동료와 공장문을 나서고(52년작 <밤의 충돌>), 찰리 채플린은 공장 정문 앞에서 경찰들에게 두들겨맞고 연행당하며(36년작 <모던타임즈>), 1950~70년대 쟁의중인 독일 자동차공장 노동자들의 음울한 퇴근 길을 담은 다큐영상 등이 연이어 펼쳐진다.

독일 미디어작가 하룬 파로키
세계 최초 영화에 ‘오마주 영상’
각종 영화속 ‘노동자 퇴근길’ 엮어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의 ‘필름 몽타주’전에서 상영중인 파로키의 영화는 내용상 아무 연관성이 없는 단편적인 이미지 조합들이다. 하지만, 36분여의 상영시간이 지나면, 지난 100년간 노동자를 보는 눈이 단순 관찰에서 자본, 권력, 감시 등의 의도를 깐 정치적 시선으로 변해왔음을 감지하게 된다. 짜깁기된 각 영화 단편들 속 노동자들 뒷모습과 그들에 대한 묘사를 주시하면 작가의 통찰은 더욱 명확해진다. 심지어 작가는 뤼미에르 영상 중에 동료 옷을 잡아당기는 한 여성노동자의 무심한 동작을 클로즈업시키면서 오늘날 노동자를 감시하는 권력을 빗대기도 한다.

‘필름 몽타주’ 전은 파로키 작업처럼 사진, 영상 이미지들을 짜깁기해 충돌시키며 새로운 서사를 낳는 몽타주 기법을 뜯어본다. 국내외 참여 미디어작가 12명의 다기한 현대 몽타주 작업 흐름들을 보여준다. 극적인 이야기나 영상만으로는 온전히 전할 수 없는 지금 세상의 복잡성, 총체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풀어내는 몽타주 기법의 전위적 흐름들을 차분하게 살필 수 있다. 고딕교회의 건축 사진과 60년대 팝음악 그룹의 율동과 노래, 70년대 화재 사건의 아수라장 같은 영상을 뒤섞어 보여주는 터너상 수상작가 엘리자베스 프라이스와 80년대 서울올림픽 홍보영상에 당시 부산항을 배경으로 밀수일을 하던 소년의 재현된 일상을 맞대어 몽타주시킨 김아영씨의 작업 등이 이채롭다.

서정적 영상과 퍼포먼스가 여성노동자들 인터뷰 영상과 어우러진 임흥순 작가의 베네치아비엔날레 수상작 <위로공단>과도 맥이 닿는 작업들이다. 7월11일까지. 일 휴관. (02) 547-9177.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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