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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제자들이 이어 쓴 황순원 ‘소나기’ 그 뒷이야기

등록 2015-06-02 19:55수정 2015-06-03 11:04

소녀 떠나고 소년은 한뼘 더 자랐을까?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루 입혀서 묻어달라구…” 올해로 탄생 100년을 맞은 황순원(1915~2000)의 단편 ‘소나기’ 마지막 대목이다.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이 ‘국민 단편’의 뒷 이야기를 작가의 제자들이 이어 썼다. 경희대에서 황순원의 가르침을 받은 작가 다섯사람이 <대산문화> 여름호 기획특집에 기고한 단편들이다.

며칠을 까닭 없이 앓다…

구병모의 ‘헤살’에서 소년은 “며칠을 까닭 없이 앓다 일어”나 학교에 가고자 집을 나선다. 그러나 소녀와 추억이 어린 개울 징검다리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만다. “징검다리는 늘 있던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과 달라진 거라곤 한복판에 지키고 앉아 가는 길을 막고 개울물을 움켰다 뿌렸다 하는 사람이 거기 없다는 하나뿐이었다.” 며칠을 징검다리 앞에서 뒤돌아서던 소년은 소녀를 업을 때 입었던 저고리를 가져와 개울에 떠내려 보내는 의식을 치르고서야 비로소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게 된다.

2년이 지나고…

소녀가 세상을 뜬 지 2년 뒤를 시점으로 삼은 전상국의 ‘가을하다’에서 중학생이 된 소년은 여전히 마음에서 소녀를 떠나 보내지 못하면서도 “짙은 감색 스커트에 흰색 블라우스를 받쳐서 입은” 담임 선생님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 소녀와 추억을 되새기다가도 그 소녀의 얼굴에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겹쳐 떠오르는 것. 소년은 그동안 모은 조약돌을 모두 물수제비를 떠서 버리지만, 하나만은 남겨 둔다. 소녀가 그에게 던졌던 그 조약돌이다.

3년이 지나고…

서하진의 ‘다시 소나기’는 3년 뒤 이야기다. 양평읍내 상급학교로 진학한 소년은 소녀가 그리울 때면 분홍 스웨터를 입은 채 잠들어 있는 소녀의 무덤을 찾아간다. “몇 알의 호두, 몇 알의 대추, 혹은 작은 조약돌을 품고서.”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앞에 죽은 소녀를 빼닮은 여학생이 나타난다. “하얀 얼굴, 장난스레 웃는 입매, 당돌한 그 표정”이 “영락없는 윤 초시네 손녀였다.” 같은 반으로 전학 온 그 여학생은 알고 보니 죽은 소녀의 사촌 희영. “동갑내기라 쌍둥이처럼 자랐”다는 희영은 하교길에 소년에게 묻는다. “갑자기 잃는 것과 갑자기 얻는 것… 어느 쪽이 더 힘이 들까.” 그런 그들 위로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10년이 지난 뒤…

이혜경의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톳물’은 10년 뒤로 시간을 훌쩍 건너 뛴다. 중학교를 마치고 도시의 공장 노동자가 된 소년은 동료들이 돌려 보던 잡지에서 “흰 블라우스에 감색 점퍼 스커트 차림의 여학생” 사진을 본다. “단발머리에 하얀 얼굴, 볼우물이며 분꽃 씨앗처럼 까맣게 영근 눈동자가 영락없는 그 서울 애였다.” 소년은 동료들 몰래 잡지에서 사진을 찢어내 작업복 호주머니에 넣은 채 틈날 때마다 꺼내 보지만, 어느 날 호주머니에 담긴 채 빨리는 바람에 사진은 부스러기가 되어 흩어진다.

소녀의 눈에 소년은…

박덕규의 ‘사람의 별’에서 소녀는 “먼 별에서 살다 지구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소녀의 시점으로 다시 쓴 이 작품의 마지막 대목에서 소녀는 자신을 데려가려는 ‘큰 새’의 등에 실리기 전 소년과 추억이 어린 스웨터만은 챙긴다.

한편 ‘소나기’의 무대인 경기도 양평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촌장 김종회 경희대 교수)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소나기 속편 쓰기 공모전’을 마련한다. 원고지 30장 안팎 분량으로 이달 말까지 전자우편으로 보내면 된다. aftersonagi@daum.net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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