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풍부한 중저음이다. 양송미의 아리아가 연습실 바닥을 치고 천장을 찔렀다. 그가 어떻게 한국인 메조소프라노 최초로 빈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 주역으로 우뚝 섰는지 설명이 필요 없는 대목이다. 소서노 역을 맡은 양송미는 애이불비(哀而不悲)를 노래했다. 아버지의 나라를 주몽한테 빼앗기고 ‘슬픈데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주몽의 나라가 잘되길 기원했다.
“나 이제 떠나가리니 그대 곁을 떠나가리니/ 하늘이 내리신 이 땅의 주인이시여/ 큰 뜻을 이루시라 과업을 완수하시라/ 한갓 원망일랑 가슴에 묻고 한갓 애증일랑/ 아스라이 내던지고 나는 떠나가리라.”
국립오페라단의 광복 70돌 기념 창작오페라 <주몽>에 나오는 ‘소서노의 아리아’다. 이 곡은 2002년작 <고구려의 불꽃-동명성왕>을 각색한 <주몽>을 위해 이번에 새로 작곡했다. 그런데 작곡기법이 무척 흥미롭다. 박영근 작곡가는 “원망을 뒤로하고 떠나는 심정이지요. 반음계 기법(chromaticism)으로 반 음씩 내려갑니다. 그다음 새로운 터전을 찾아가는 부분은 국악 기법을 쓰고, 다시 마지막 부분은 반음계 기법으로 돌아갑니다”라고 설명했다. 아리아가 바뀌면 오페라 전체가 바뀐 듯한 느낌을 준다. ‘유리의 아리아’도 새로 작곡했다. 아버지를 만나는 설렘을 장-단조를 넘나드는 기대와 흥분의 음표로 찍어냈다. 테너 정의근이 부른다.
2002년 버전의 아리아도 빼놓을 수 없다. 황후 역의 소프라노 박현주는 “언제 만날지 모르는 주몽을 떠나보내며 황후 예씨가 부르는 아리아가 백미입니다. 음악이 주는 효과와 만족감이 저에게도 너무 소중한 아리아였어요”라고 했다. 주몽 역은 한국을 대표하는 바리톤 우주호가 맡았다. 110명의 합창단의 하모니가 그 뒤를 든든히 받친다.
고구려 건국신화다운 웅장한 서곡도 귀를 잡아챈다. 호른의 팡파르가 극의 시작을 알린다. 막 뒤에서 무반주 남성합창이 서서히 울려나온다. 21세기 관객을 고대로 이끄는 과정이다. 마치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처럼 신화로 초대하는 것이다. 이 민족 서사시에 음악을 입힌 박영근 작곡가는 이 대목에서 통일을 강조했다. “두 살 때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으로, 분단된 조국에서 광복 70돌을 맞아 가슴이 아픕니다. <주몽>을 남과 북이 함께 부를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장대한 무대도 볼거리다. 150여명이 참여하는 전통복식과 북춤이 가미된 전투 장면은 민족 서사시를 화려한 판타지로 재현한다. 무덤에서 출토된 문양을 본떠 신화에 맞는 의상을 만들었다. 그래도 미흡한 표현은 현대적인 영상을 많이 사용했다. 김홍승 연출은 장대한 액션을 위해 무술·무용인을 보강했다고 밝혔다. “극적 요소보다는 심오한 음악과 시적인 노래를 가미해 다른 공연 형태와 차별화했지요. 2002년 초연과 달리 무술인과 무용수를 보강해 전투 장면과 군무를 웅장하게 연출했습니다.”
오는 6,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6-5284.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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