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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13인의 춤꾼이 질주하오, 로봇처럼

등록 2015-06-07 19:23

안애순의 신작 춤 <공일차원>은 자본주의와 게임을 중첩시켜 현대인의 억압적 삶을 표현했다. 사진은 포드주의의 컨베이어 시스템을 패러디한 장면이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안애순의 신작 춤 <공일차원>은 자본주의와 게임을 중첩시켜 현대인의 억압적 삶을 표현했다. 사진은 포드주의의 컨베이어 시스템을 패러디한 장면이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리뷰] 국립현대무용단 ‘공일차원’

춤꾼의 몸은 부품이다. 몸은 톱니바퀴와 맞물려 고통스럽게 돌아간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처럼, 몸은 기계의 속도에 맞춰 기계가 된다. 바로 1910년대 헨리 포드가 만든 컨베이어 시스템이다. 벨트 앞의 노동자는 제한된 시간 안에 무조건 생산량을 맞춰야 한다. 춤꾼들 뒤로 거대한 모니터도 등장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러더’ 감시체계로 보인다.

자본주의와 게임 중첩시켜
억압과 숨겨진 폭력 드러내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 5~7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 올린 신작 <공일차원>은 자본주의의 억압과 강제를 그린다. 제목 ‘0’과 ‘1’은 디지털을 상징한다. 자본주의와 게임을 중첩시킨 이 현대춤은 현대인의 삶을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굽어본다. 그리고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오늘날, 노동과 생존이라는 삶의 방식은 과연 그에 걸맞게 발전했는지 묻는다.

막이 오르면 무대 전면에 붉은 장막이 걸려있다. 춤꾼들이 두리번거리며 등장한다. 잔뜩 공포에 질렸다. 무대 바깥의 자본주의적 억압을 무대로 불러내는 장치다. 춤꾼들은 서로 때리고, 차고, 싸대기를 날린다. 배를 잡고 쓰러지고, 갑판 위의 생선처럼 파닥인다. 만인과 만인이 대결하는 장면이다.

춤꾼의 동작은 불연속적이다. 이어질 듯 끊어지고, 끊어질 듯 이어진다. 구체 관절인형처럼, 때로는 레고인형처럼, 때로는 ‘살아 있는 시체’ 좀비처럼 움직인다. 13명의 춤꾼이 무대 주위를 질주하는 동작은 로봇처럼 분절적이다. 마치 1초에 40프레임이 담긴 동영상에서 20프레임쯤 빼낸 듯하다.

‘백설공주’처럼 깊은 잠에 빠진 여성이 나오는 장면도 흥미롭다. 남성은 주검 같은 여성의 몸을 제 맘대로 움직인다. 수동적 여성을 통해 얻는 남성의 욕망은 노동 착취와 궤를 같이한다. 성적 착취의 컨베이어 시스템이다.

모든 동작은 게임과 중첩된다. 1980년대 ‘스트리트 파이터’에서 최근의 것까지 무대에 재현되는 게임은 가학-피학적 폭력을 담았다. <모던 타임스> 패러디가 산업자본주의의 억압을 그렸다면, 게임 이미지 차용은 후기 자본주의의 숨겨진 폭력을 에둘러 드러낸다. 여기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달라진 기술에 걸맞은 자본-노동의 관계 재설정은커녕 민주화 과제와 미덕도 사라진 모습을 본다. 춤판의 끝, 미확인비행물체(UFO)가 나타난다.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들며 마침내 미래로부터 영웅이 당도한 것인가? 섣불리 판단할 필요는 없다. 영웅도, 영웅의 환상도 동시대 인간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누구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 나로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하는지 판단은 관객 몫이다.

마지막으로 현대춤을 꼭 현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 쇠처럼 단단한 근육의 남성이 쇠망치로 쇠를 두드린다. “깡! 깡! 깡!” 쇠와 살이 파찰하는 금속음과 “펑! 펑! 펑!” 공중으로 분사되는 땀방울. 현대춤이 어렵다지만, 현장에서만 느끼는 오감 만족이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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