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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남도길 걸음마다 ‘그림꽃’

등록 2015-06-07 19:48수정 2015-06-08 13:30

이종구 작가의 ‘달마산 미황사’.
이종구 작가의 ‘달마산 미황사’.
‘2015 풍류남도 아트프로젝트’
논밭 들녘…동백꽃밭…달마산 만덕산 우러러보고…미황사로 백련사로
때로는 묵직하게, 때로는 소박하게
풍경과 마주치면 주저앉아 그리고 또 그렸네
2015년 이 땅의 초여름은 따갑고 막막하기만 하다. 이런 즈음에 더욱 절절하게 가닿고픈 곳이 있다. 고정희 시인이 ‘절하고 싶고, 무릎 꿇어 입 맞추고 싶은 땅’이라고 고백했던 남도 끝자락 해남, 그곳이 우리에게 손짓한다. 펑퍼짐한 논밭 들녘이 도처에 해솔숲 무리와 함께 펼쳐지고 그 너머 작은 산들이 올망졸망 솟은 해남의 자연과 문화유산들이 그림바다가 되어 울렁거리고 있다.

해남읍내 한켠에 한국 미술판의 내로라하는 중견·소장 작가 40여명의 그림마당이 펼쳐졌다. 지난봄 작가들이 무리 지어 눈맛 다시며 돌아보고 기록했던 해남과 강진 일대의 꽃숲과 사람, 절집의 풍경들이 380여점의 드로잉들로 세상에 나왔다. 해남 어르신들이 ‘우리 집’이라고 부르는 해남읍 해남종합병원 구내 행촌미술관에 판을 깔았다. 지난 5일 막을 올린 기획전 ‘동백매화화첩 펼쳐보기’전이다. 이 병원 설립자이자 서화 수집가, 예술 후원자였던 행촌 김제현(1926~2000) 박사의 삶을 기려 지난해 설립된 행촌문화재단이 ‘2015 풍류남도 아트프로젝트’란 이름 아래 차린 대형 기획전의 일부다.

해남 행촌미술관 대형 기획
중견·소장작가 40여명 참여
올봄 2차례 남도기행 떠나
자연과 사람·문화유산 화폭에

30평 남짓한 작은 전시장 안에 해남과 강진, 진도의 풍경 드로잉들이 올올이 박혀 빛난다. 작가들이 일일이 화첩에 옮기고 형상화한 해남과 강진의 다채로운 표정들은 작은 드로잉 그림이 되어 사방 공간을 꼭꼭 채워놓았다. 땅끝마을 내려다보는 달마산의 기암괴석과 그 아래 미황사의 절집들이 깔깔하거나 푸근한 필선과 색감에 담겼고, 찬란한 햇살에 농익은 해남 황토들녘의 땅기운과 주민들의 아기자기한 표정과 움직임이 아지랑이처럼 화폭에 피어오른다.

드로잉마다 개성이 가득하지만, 작가의 이력으로 보면 뜻밖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풍경들도 적지 않았다. 농민화로 유명한 참여미술 작가 이종구씨는 저물녘 절집 불빛이 노란 점처럼 박힌 달마산 미황사와 만덕산 백련사의 원경을 소박하게 담았다.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로 꼽히는 윤석남 작가는 봄날 새벽 백련사 뜨락의 동백나무 숲에 찾아온 새떼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를 ‘꿀 따먹는 소리’라고 명명하며 그 정경을 새떼의 주둥이가 옹알거리는 장난기 어린 이미지로 표현했다. 해남 임하도에 작업실을 두고 근처 팽목항을 오가면서 세월호 사건의 풍경들을 주시해온 서용선 작가는 특유의 거칠고 묵직한 선으로 달마산의 정기와 미황사 전각의 싹싹한 자태들을 강조했다. 칼맛 내는 목판화가 홍선웅씨는 친필로 백련사에서 스님과 정담을 나누며 마신 차 맛을 떠올리며 동백꽃밭의 분위기를 옮긴 소담한 산다화 연작을 내걸었다.

서용선 작가의 ‘백련사 배롱나무’.
서용선 작가의 ‘백련사 배롱나무’.
앞서 3월20~21일 열린 ‘동백매화답사’에는 서용선, 윤석남, 이종구씨 등 36명의 작가들이 참가했다. 해남군 문내면의 작은 섬 임하도를 시작으로 고즈넉한 들녘의 바다가 보이는 산이면 매실농원, 달마산 기슭 미황사의 대웅보전과 전각, 강진 백련사와 동백꽃밭 등을 돌아본 그네들의 작업 열기는 대단했다. 산이면의 매실정원에서 바라본 하늘과 땅이 만나는 들녘 풍경에 감탄을 연발했고, 미황사 대웅보전 앞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주저앉아 스케치에 여념이 없었다고 했다. 작가당 2개씩 30여쪽짜리 화첩을 줬지만, 상당수 작가들은 드로잉이 넘쳐 자신들의 개인 화첩까지 들고 와 가득가득 풍경들을 그려넣었다. 박재동, 김억 등 몇몇 작가들은 일정이 끝난 뒤에도 며칠을 더 해남에 머물면서 주변의 바다와 산야를 그리고 다녔다. 해남 대흥사와 윤두서의 자취가 깃든 녹우당을 돌아본 5월 2차 답사도 20명 이상이 참여했는데, 민정기 작가가 답사 참여를 자청해 들어왔고, 1차에 참여했던 김천일, 박영길, 하성흡 작가도 다시 참여하는 등 창작열을 불태웠다.

7월20일까지 열리는 이 드로잉 잔치는 ‘풍류남도 아트프로젝트’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작가들은 7월24일부터 미황사, 백련사, 대흥사 등의 절집과 임하도 작업실, 행촌미술관에서 열릴 본전시 ‘풍류남도’를 손꼽아 고대하는 기색이다. 봄 기행에서 뽑은 드로잉을 바탕 삼아 각자 작업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선보이는데다, 이 전시가 남도 사찰을 무대로 처음 열리는 현대미술전이기 때문이다. 윤석남 작가의 경우 고려시대 백련사의 신앙정화운동 ‘백련결사’를 상징하는 연꽃 품은 사람들 100인의 조각상을 준비중이다. 김억 작가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서 영감을 얻어 해남, 강진, 진도의 풍경 12경을 펼쳐내는 대작을 선보일 계획이다. 기획자인 이승미 관장은 “이번 작가기행과 풍류남도 기획전은 전통화가들과 교유하고 이들을 후원해 남도화단에 큰 발자취를 남긴 행촌 선생의 유지를 새롭게 계승하려는 취지이기도 하다”며 “세대간 동료간 소통 단절로 허물어진 작가 공동체를 되살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061)530-0114, 536-4116.

해남/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행촌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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