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화가 사석원씨. 사진 노형석 기자
‘풍류기행’ 사석원씨 3년만에 전시
“이번에는 평소 마음에 품고있던 궁궐 모습들을 한번 내키는대로 그려보자 했지요. 너무 무거워 보이나요?” 미술동네의 주당이자 풍류객으로 소문난 중견화가 사석원(55)씨가 생경한 조선의 궁궐 그림을 들고 3년만에 돌아왔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새달 12일까지 열리는 그의 개인전 <고궁보월>(古宮步月)’은 낯선 소재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두툼한 원색의 물감층으로 뒤덮힌 화폭에 경복궁, 창덕궁 등의 적막한 전각·정원을 배경으로 호랑이, 사슴, 소, 부엉이 등의 동물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정갈한 한국화풍으로 먹선을 부리듯 고궁 후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옮긴 작품들도 있다. 익살기 어린 동물상들로 인기를 모았던 사씨의 기존 작품들과는 한참 다른 느낌이라 종잡기가 쉽지 않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어릴 적부터 창경원과 경복궁 향원정 같은 데를 돌아다니곤 했어요. 이런 일상의 경험들이 기억에 쌓여있었고, 저도 50대를 지나니까 궁궐에 담긴 과거의 비장한 역사를 그리고 싶어졌어요. 18~19세기 격동기를 겪은 고종, 정조 같은 유명한 군주들은 당시 어떤 마음으로 궁궐을 거닐며 풍경을 바라봤을지가 우선 궁금했어요. 그들의 시선을 나름 떠올려보고 그간 그려온 동물들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싶었죠. 역사를 담다보니 이전 화풍과는 달리 진중한 분위기로 작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가가 맨먼저 가리킨 작품은 ‘1895년 경복궁 향원정 호랑이’다. 검푸른 하늘에 달이 뜬 밤에 향원정 앞에 눈을 부라린 호랑이가 사슴, 부엉이와 함께 나타나는 대작이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당시 왕비를 위해 지었다는 향원정 앞에서 배우자의 안위를 걱정했을 고종의 마음을 떠올리며 그렸다고 했다. ‘1795년 창경궁 명정전’은 눈발 흩뿌리는 명정전 앞에서 꽃을 인 소 두마리가 꽃길을 지나가는 모습이다. 그해 정조가 온갖 난관을 뚫고 조성한 신도시 화성으로 행차하는 출발 광경의 분위기를 그렇게 재현해봤다는 설명이다.
전국 풍류기행기를 출간하기도 했던 사씨는 전시 뒤 경주와 일본, 중국 등을 돌며 미뤘던 풍류기행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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